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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모음

미군부대에서 카투사로 복무하면서 경험한 리더십

<미군부대에서 카투사로 복무하면서 경험한 리더십>

1. 4성 장군 박찬주 대장 부부의 갑질로 한국군 리더십에 대한 불신이 크다. 아직 청산되지 못한 왜곡된 위계질서가 드러난 사례가 아닐까 생각한다. 여전히 남성 지배적인 한국 사회에서 군생활의 경험은 사회에도 미치는 영향이 크다. 이 글은 주관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했으며 미군이 한국군보다 모든 점에서 뛰어나다는 논리가 아니다. 징병제인 한국과 모병제인 미국을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미군에서 리더들이 하급자인 사병을 어떻게 대하는지 한 번 생각해봤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글을 올린다. 여전히 우리 군에도 훌륭한 리더들이 많다. 그들의 노력으로 여기까지 왔고 앞으로 더 나은 군으로 변모할 것을 믿는다. 박 대장 사건으로 국가를 위해 동료와 부대원들을 위해 성실하게 복무하며 땀흘리는 훌륭한 군인들의 노력이 주목받지 못하는 것이 정말 안타깝다. 숨은 일꾼들을 조명하는 기사도 많아졌으면 좋겠다.

2. 미군부대에서 근무하면서 가장 충격 받았던 것은 계급이 올라갈수록 일을 더 열심히 그리고 오래 한다는 것이다. 한국군에서는 (사병의 경우) 진급할수록 일을 적게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을 더 많이 한다고 내게 주어지는 인센티브가 없으니까. 하지만 미군 부대에서는 얘기가 다르다. 마지막까지 남아서 모든 일을 마무리하는 사람은 이등병이 아니라 가장 계급이 높은 사람이다. 그들은 계급이 낮을수록 비교적 단순한 일만 시키고 하급자들을 퇴근시킨 후 나머지 일을 상급자들이 처리한다. 계급이 높으면 더 많은 보수를 받으니까 하급자보다 더 잘해야 하고 더 많이 일을 해야 한다는 인식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듯 하다.

3. 훈련을 나가거나 근무 중일 때 식사 시간이 되면, 가장 계급이 낮은 사람부터 식사를 하도록 하고, 계급이 높은 사람은 맨 마지막에 식사를 하거나 시간이 부족하면 끼니를 거르기도 한다. 그런 경우가 잦았다. 내 경우, 순찰을 하다가 같이 일하는 미군 파트너의 계급이 낮으면 먼저 식사하도록 하고 시간이 부족하여 내가 식사를 못한 경우도 있다. 계급이 낮은 사람을 먼저 챙기는 문화, 군대에서 그게 가능하다는 것이 놀라웠다. 일부 한국군 부대에서 사병들을 위해 도서관을 만드는 시도는 매우 긍정적이라고 본다. 자신이 존중받는다고 느끼면, 무슨 일이든 더 열정적으로 하게 된다.

4. 미군은 사소하던 크던 자신이 무언가를 책임지고 있다는 것을 매우 자랑스러워한다. 이러한 인식은 전문성(professionalism)에 기반하는 것으로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프로답게 수행하는 것을 최고의 덕목으로 꼽는다. 따라서 어떤 작전을 수행하거나 주어진 업무를 수행하는데 있어서 외부인이나 타 부대에서 온 사람이 “여기 책임자가 누구입니까?” 라고 물었을 때 “제가 책임자입니다.”라고 매우 자랑스럽게 얘기를 하며 책임자가 당당하게 등장한다. 최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일부 우리 군(사회)의 모습과는 사뭇 차이가 있다.

5. 그들은 "책임진다는 것"의 의미를 우리와 조금 다르게 받아들이는 듯 하다. 한국에서는 어떤 일에 책임을 진다는 것은 그것이 잘못되었을 때를 생각하여 최대한 회피해야할 것으로 보지만, 미군에서는 자신이 어떤 일이나 임무에 대해 책임짐으로써 프로 정신을 인정받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적어도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일, 또는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대해 누구보다 프로 의식과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며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을 아주 기꺼이 받아들인다. 상급자의 명령에 따르는 것은 군에서의 위계적 명령이기도 하지만, 상급자가 보여주는 전문성에 대한 존중이기도 하다. 자신보다 능력 면에서, 책임성에서 뛰어난 상급자에 대한 존중이 위계질서를 구성하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6. 미군에서는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부대원 전체가 달리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때 가장 선두에 서는 사람은 이등병이 아니라 부대장과 원사(하사관)다. 나이 50이 이미 훌쩍 넘은 그들이 가장 선두에서 큰 목소리로 군가를 선창하고 최선을 다해 뛴다. 땀이 비오듯 쏟아지는데도 낙오하지 않고 끝까지 완주하는 모습, 정말 감동적인 장면이다. 리더란 그런 것이다. 이런 비교를 하는 것이 너무 비참하지만, 그래도 상상을 해보자. 한국군 장군들 중에서, 계급이 높은 하사관들 중에서 그렇게 선두에서 달리며 목청 높여 군가를 부를 수 있는 군인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7. 계급이 높거나 권한이 있다고 그것을 개인적 이익을 위해 남용하는 일은 미군에서 별로 없었던 기억이 난다. 공적 권한을 사적 영역으로 확대했을때 그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 누군가 그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번은 내가 미군 사병에게 이렇게 물어본 적이 있다. 한국군에서는 하사관이나 장교가 이사할때 사병들을 부려먹는 일이 빈번하다. "만약 당신의 상관이 그런 일을 시킨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물어봤다. 그 친구의 대답은 "Fxxx you"라고 말한다였다. 한국군의 고위직 예를 들어 장군들은 사병인 운전병을 밤 늦은 시간이던 주말이던 아주 열심히 부려먹었다. 이번에 문제가 된 갑질 논란처럼. 피치 못할 공무를 위해 운전병이 그들과 함께할 일이 있을수 있지만, 모든 일이 공무는 아니었을 것이다. 어느 대위는 자신의 대학원 과제를 카투사에게 시키기도 했다. 물론 모든 한국군 상급자가 그러진 않았겠지만 대체로 공과 사가 잘 구분되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사병은 구조적인 약자인데, 일부 하사관이나 장교는 그 점을 잘 악용하였다.

8. 메인 게이트에서 근무중일때 특별한 경험을 했다. 주한미군의 총책임자인 리언 라포트 연합사령관(4성장군)은 자신의 관용차로 BMW 7시리즈를 사용하고 있었다. 주말이었다. 낡은 국산차인 대우 에스페로 한 대가 유유히 다가오더니 내 앞에서 멈췄다. 그리고 한 노인이 내게 신분증을 건넸는데 ..... 그는 바로 라포트 4성장군이었다! 주한미군 끝판왕 미군 4성장군이라니!!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평소처럼 운전병 불러서 관용차를 타고 오면 신분증 확인도 하지 않고 무사통과에 편하게 갈 수 있었던 그가 손수 운전하며 신분증 확인을 받는 불편함을 감수한 것이다. 그것도 군인 서열로 대한민국 No.1인 4성장군이 .. 미군 장군들은 업무 시간 이후에 자신의 차를 타고 다니는 것을 종종 목격하였다. 하지만 한국군 장군이 자신이 직접 운전을 하면서 신분증을 내미는 경우는 단 차례도 목격하지 못했다. 그들은 그래야 할 필요성을 전혀 못느꼈을 것이다.

9. 한 번은 용산 부대 내에서 고위직 장군의 이취임식이 열렸다. 헌병으로서 나는 그 날 이취임식에 참석하는 한국군, 미군 장군들과 내외빈 손님을 안내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3성 장군 이상만 차를 타고 행사장으로 입장할 수 있고, 그 이하 계급은 걸어서 들여 보내라는 헌병 대장의 지시가 있어서 그렇게 안내를 하고 있었다. 미군은 단 한 명도 대놓고 불만을 표시하지 않았는데, 한국군 원스타 차량이 내 앞에 멈춰서더니, 장군은 없고 그 부인이 내게 통과시켜달라고 요구하는 일이 있었다. 원칙대로 얘기하며 그럴 수 없다고 말하자, 그 부인은 내가 카투사인 것을 알아차리더니 내 이름을 적어서 한국군 부대에 말하겠다고 나를 협박했다. 나는 쫄지 않고 그러시라고 당당하게 얘기했다. 그렇게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한국군에서 나를 징계하려 해도, 나는 원칙을 지켰기 때문에 적어도 미군 측에서는 그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것이라는 강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갑질이 원칙을 이길수는 없다.

10. 카투사로 복무하지 않았더라면 직급이 낮거나 나이가 어린 사람을 대하는 나의 사고방식과 행동은 지금과 많이 달랐을 것 같다. 아랫사람에게 대접 받고, 마음대로 부려먹는 것을 마치 성공한 직장 상사나 상급자로서 당연히 누려야 하는 특권이나 권리처럼 여겼을지도 모르겠다. 아랫사람을 마음껏 부리면서도 책임지지 않는 갑질, 적어도 미군 부대에서 이러한 갑질은 보편적인 것이 아니었다. 계급이나 직급, 나이로 상대방을 강요하며 자신을 따르도록 하는 리더십을 별로 경험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책임을 충분히 다함으로써 리더십은 발휘된다. 모범을 보이고 열심히 먼저 하면 다른 사람은 자연스럽게 그 사람을 따라 간다.

11. 내가 이등병이었을 때 나를 격려했던 미군 병장과 하사의 진심어린 말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영어를 잘 하지 못해서 벙어리처럼 지냈고, 체력 또한 좋지 않아 아침 훈련 때마다 사실상 낙오자 대열에서 뛰었던 내 옆에서 끝까지 함께 뛰면서 그들은 나를 결코 버리지 않았다. 그들은 언제나 내 역할을 존중해주었으며 내가 성장할때까지 묵묵히 기다려주었다. 그들은 내가 “최고의 카투사가 될 것이다”고 말하며 내게 용기를 주었고, 나는 정말 악착같이 하루 하루를 열심히 보냈다. 그리고 내가 상병이 되자마자 나는 미군 두 명을 인솔하는 팀리더가 되었다. (당시 우리 부대에서 카투사는 병장이 되어야 팀리더가 되었다.) 내게 용기를 주었던 미군들처럼 나도 내 팀에 속한 하급자들에게 모범이 되고자 정말 열심히 노력했다. 마지막 휴가를 떠나는 전날까지도 게으름 피우지 않고 열심히 근무했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아주 어버버하던 시절, 내게 진심어린 말로 격려해주었던 미군들의 말이 정말 고맙다. 많이 실수하고 당장의 결과가 좋지 않았지만 그들은 내게 희망을 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내가 더 잘할수 있을때까지 기다려주었다.

12. 솔선수범과 책임감에 기반한 리더십, 그리고 그것을 따라가는 사람들 사이에는 강한 연대감이 형성되며 건강한 시너지가 발생한다. 나에게 용기를 주었던 미군 상관들은 내가 징병제로 군에 왔고, 나를 마음껏 부려 먹어도 내가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나의 존재와 역할을 존중해 주었다. 우리 군에도, 그리고 우리 사회에도 내가 경험했던 덕목을 갖춘 리더들이 더 많아지길 기대한다. 묵묵하게 최선을 다하는 리더들이 지금보다 더 주목 받았으면 좋겠다. 더 많은 권한을 가진 최상위 상급자들이 자신이 누려왔던 당연한 '갑질', '특혜'를 먼저 내려 놓고, 당연히 그래야 하는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부터 시작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