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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투사 이야기

(카투사 헌병/MP 이야기) 1. 카투사.. 나와의 급만남

이야기를 시작하며

이 글은 지난 2000년부터 2002년까지 저의 카투사 복무 시절을 담은 이야기입니다. 용산 헌병대에서 2년 2개월 동안 ‘순찰 헌병’ 생활을 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제 경험을 함께 나누고자 펜을 잡았습니다. 카투사가 일반 군인보다 더 우수하다거나 일부 한국군보다 더 고생을 한다는 이야기를 하자고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육군이든 카투사든 또는 다른 형태의 근무를 하든지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자신의 군 복무 시절의 추억과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습니다. 이 글을 통해 카투사 헌병(MP)이라는 조금 독특한 경험을 함께 나눔으로써 카투사로 복무했던 분들에게는 ‘추억’을 나누고, 카투사에 대해 오해를 가진 분들에게는 (일부지만) ‘진실’을 알려주고자, 그리고 더 나은 한국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건설적인 생각’을 나누고자 합니다. 이 글에 담긴 내용은 저의 주관적인 경험이며, 모든 카투사에게 해당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카투사, 그리고 호기심

1999년 봄.

나는 그 때 육군에 ‘카투사(KATUSA: Korean Augmentation Troops to United States Army)’라는 제도가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 동안 주위 사람들에게 들어서 대충 외인부대가 있다는 것을 들은 적은 있었지만 그게 정확히 뭔지는 몰랐다. 그저 ‘미군부대에서 생활하는 것’ 정도 밖에는 아는 지식이 없었다. 어릴 때부터 외국인들하고 어울리기 좋아했던 나는 그냥 한 번 해볼까 하는 식으로 카투사에 지원하기로 했다. 당시 나에게 있어서 카투사라는 것은 목표라기보다는 하나의 호기심이었을 뿐이었다.

육군으로 가는 것보다 왠지 멋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있었고, 육군해서 힘들게 군생활 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에 어떻게 하면 카투사가 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우선 토익 성적표를 제출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토익 시험을 접수했고 물론 그 전에는 한 번도 토익을 본 적이 없어서 그냥 한 번 보는 식이었다. 당시 커트라인은 600점.

토익 시험 당일 아침.

“Damn!”

하필 늦잠을 잤다. 그 때 나는 (서울) 아현동에 살고 있었는데 시험장이 젠장 성동구였다. 그리 멀지 않지만 그다지 가까운 거리도 아니었다. 문득 가기 싫은 생각이 들었다. 아마 카투사에 꼭 붙어야 한다는 절박감이 없었기에 이런 귀차니즘이 발동하지 않았나 싶다. 군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기에 그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 시험비를 낸 걸 어떻하나! 그래서 택시를 타고 늦게라도 시험장에 가자는 생각으로 급하게 집을 나섰다.

하늘이 나를 도왔는지 운 좋게 시험 시간에 딱 맞게 도착했다. 택시를 탔는데 정말 다행히도 차가 하나도 막히기 않았길 망정이지… 

나는 이 시험이 그렇게 중요한 시험인지 그 땐 몰랐으니까.... 

그 시험이 내가 본 처음이자 마지막 토익 시험이었다. 그렇게 시험을 치루고 원서를 접수하고 여느 때처럼 학교를 다니며 보냈다.

그러던 11월의 어느 날.

집으로 무슨 성적표처럼 보이는 기분 나쁜 봉투가 날라왔다.

‘성적표?’

내심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그 순간 갑자기 몇 달 전 카투사에 지원했던 기억이 섬광처럼 떠올랐다.

'앗! 그렇지! 벌써 11월이구나..’

그렇다. 그것은 바로 카투사 ‘합격 통지서’였다. 내년(2000년) 8월 25일에 입대하라는 것.

솔직히 별 느낌은 없었다. 토익도 겨우 봤고 카투사도 그냥 지원했으니 합격한들 무슨 특별한 느낌이 있었겠나? 그냥 머 내년에 군대 가는구나.. 이런 생각 밖에.. 카투사의 개념조차 없었던 그 시절.

그렇게 카투사가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운이 억세게 좋았던 것이다.

그리고 2000년 8월 25일. 입대일은 어김없이 나를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