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1월 2일.

난 용산으로 자대 배치 받았다.

“MOS (Military Occupational Specialty: 군사주특기) 95B.”

순찰헌병이라는 것. 그 순간 카투사에 헌병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았다. 그리고 ‘95B’라는 주특기가 MP(Military Police)라는 것도. 전체 동기 중에서 용산 헌병으로 가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다. 용산에 배치 받은 내 동기들은 모두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하지만 난 기분이 좀 찝찝했다. 내가 무슨 일을 하러 가는 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저 조금 두려울 뿐이었다. 아무도 헌병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단지 KTA 구석 구석에 헌병에 대한 얘기가 전설로만 남아 있었을 뿐.

용산행 지하철

점심을 먹고 우리는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쪽팔리게 무슨 지하철역? 그렇다, 진짜 쪽팔렸다. 다른 친구들은 버스 타고 군용 트럭타고 가는데 용산으로 가는 우리는 쪽팔리게 두 줄로 쭉 걸어서 지하철역까지 걸어갔다. 지나가는 아줌마, 애들이 다 쳐다본다. 쟤네도 군인이냐고. 그리고 적당히 흩어져 용산행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 안에서도 마찬가지. 우리는 별 말이 없었다. 당시의 쪽팔림을 무엇으로 설명하리.

드디어 용산역에 도착했다. 용산역 앞에는 버스 두 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보직에 따라 각 선임 병장들이 신병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무뚝뚝하게 생긴 한 병장. 그는 내 이름을 부르더니 아무런 말없이 버스에 올라탔다. 그리고 나도 그의 옆에 말 없이 앉았다. 뒷자석에서는 고참과 신병이 자연스럽게 얘기하며 분위기가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내 옆에 있는 그 고참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버스가 용산역을 떠나 용산 미군기지 South Post를 통과했다. 멋지게 생긴 호텔이 보이고 골프장이 보이고 학교 같은 건물들도 보였다. 외국애들도 많이 보여서 여기가 미국인 것 같았다. 모든 것이 정말 신기했다. 전혀 한국이라는 생각이 안 들었다. 모든 것이 낯설고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이곳이 그 동안 내가 살았던 한국이라니. 그리고 버스가 Main Post로 진입했다. 쭉 직진해서 언덕을 올라가는가 싶더니 맨 꼭대기에서 멈추었다. 그리고 내 옆에 목석처럼 앉아 있던 고참이 마침내 입을 열더니.

"야! 내려!" 

부랴부랴 내렸다.

새 보금자리

그렇다. 우리(헌병) 막사는 용산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있다. 그것부터가 기분 나빴다. 하지만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일. 이미 나는 헌병이 되었다. 고참을 따라 막사에 들어갔다. 복도도 있고 정말 이상한 건물 같다. 화장실도 깨끗하고 외국애들도 보이고. 2소대라고 한다. 2소대 선임하사를 만나고 난 후 내가 2소대라는 것을 실감했다. 그는 마치 옆집 쌀집 아저씨처럼 편안하게 생겼던 선임하사. 잠시 인사를 나누고 방으로 갔다.

내 방. 내 방은 바로 위 고참과 그 위 고참이 함께 쓰는 3인 1실의 방이다. 거기서 내 자리는 침대와 4 drawer(네 칸짜리 옷장) 달랑 하나. 그것이 내 공간의 전부였다. 옆에는 두 개의 커다란 Wall Locker(일종의 장롱처럼 생김)가 가로막고 있어서 낮에도 불을 켜야 겨우 볼 수 있을 정도다. 한마디로 맨 구석에 있는 조그만 공간. 그게 내 방이었다. 그래도 좋았다. 한국군 부대와 비교하면 이곳은 천국이다.

선임병장의 말에 따라 침대에 담요를 깔고 KTA에서처럼 각을 잡았다. 그리고 그 날 저녁 내 방에 있는 고참들이 내 군화와 군복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어리버리하게 빛나던 내 군화가 헌병 고참의 손을 거친 후 마치 불이 나듯 광이 나기 시작했다. 군화에 해가 떴다.


'과연 저게 바로 말로만 듣던 헌병의 광(光)이란 말인가?'

말로만 듣던 헌병의 광(光)을 실제로 경험한 순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군복 또한 예술이었다. 골판지를 만지는 듯한 빳빳함과 이 예리하고도 미세한 각. 머리가 아파왔다. 이제 내가 저짓거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뒷골이 땡겼다.

그렇게 용산에서의 첫날이 지났다.

용산 미군기지는 크게 메인 포스트(Main Post)와 사우스 포트스(South Post)로 구성되어 있다. 메인포스트 최북단(?)에 위치한 일명 헌병의 언덕(헌병대 막사)을 꺾어 내려가면 Camp Coiner라는 조그만 캠프에 당도하게 된다. 용산 기지에는 하나의 조그만 도시라고 해도 무관할 정도로 매우 크며 다양한 시설들이 있다. 병원, 초중고등학교 및 대학교(분교), 도서관, 체육관, 축구장 및 골프장과 미식 축구장에서부터 호텔, 나이트 클럽과 버스 정류장 등 수 많은 시설들이 있고, 게이트(부대 출입구)도 수 십 개에 이른다. 미군은 직업 군인이기 때문에 이렇게 다양한 편의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그 수준도 왠만한 한국의 시설보다 더 좋다. 한국군은 의무 복무이기 때문에 대충 지원해줘도 된다는 생각때문인지 한국군 사병이 받는 전반적인 지원은 정말 열악하다.

Posted by Jason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