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이 먼저다" 는 표어가 좋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절실한 것이 무엇인지 아주 정확하게 꿰뚫고 있는 말이 아닐까 싶다. 사람이 우선이 아니었기에 한국 사회는 철저한 자본주의 사회가 되었고, 불합리한 대우를 받아도 보호할 수 있는 장치도 없었다. 아니 그런 사람을 보호해야 할 필요성조차 느끼지 않았다.

한국 사회에서 그 동안 사람은 없었다. 6.25 전쟁 이후 국가는 먹고 살아야 한다는 강력한 성장 주도 정책을 시행하면서 성장 이외 모든 가치들은 희생당했다. 수 십 년의 성장 사회를 거치며 한국 사회는 철저하게 자본주의화 되었다. 국가가 먼저였고, 회사가 먼저였다. 사람은 그저 국가와 회사의 발전을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일을 하다 사람이 죽어도 돈 몇 푼으로 해결했다. 군대에서 사람이 죽어도 조용히 묻혔다. 심지어 교회에서도 그랬다. 교회가 먼저지 사람은 교회의 성장을 위한 도구로 여겨졌다. 목사가 부패해도, 성도들이 불합리한 대우를 받아도 모두 교회 성장, 선교라는 이름 아래 묻혔다. 성스러운 헌신이라는 이름으로 성도들은 교회를 위한 봉사를 강요당했다. 아무리 몸이 아파도 예배에 빠지면 안된다. 그것이 진짜 신앙이라고 부추겼다. 대한민국 어디에도 사람은 없었고, 정의도 없었다.

사람이 먼저고 사람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드는 일은 무척 어렵다. 우린 이미 사람이 뒷전인 세상에 너무 익숙해져서, 사람이 먼저가 되면 그것이 옳다는 것을 알지만 여전히 그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택배 기사의 근로시간을 적절하게 보호하기 위해 택배 배송이 지금보다 하루 더 늦어진다고 하면 불만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휴가일수가 제도적으로 보장되어 있어도 막상 쓰려고 하면 일이, 회사가 우선이다보니 (본의 아니게) 눈치를 주고, 심지어 휴가 떠난 사람에게까지 연락하여 업무를 얘기한다. 회사 단체 카톡방은 주말에도 업무 관련 대화가 오가지만 이의를 제기하기엔 부담된다. 교회에서 부당한 또는 무리한 헌신 요구에 이의를 제기한 성도는 '불순종한 사람'으로 낙인 찍힌다. 목사뿐 아니라 심지어 성도들도 그 사람을 적대시하는 경향이 있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나의 배우자와의 인생 설계에 집중하기보다 하객 수, 축의금을 더 걱정하기도 한다. 정작 그 순간이 다가오자 돈이 먼저인거다.

이미 사람이 뒷전인 세계관이 고착화된 사회에서 사람이 먼저인 사회로 변화하기엔 엄청난 노력과 시간,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그 동안 누려왔던 경제적 이익, 편리함들을 기꺼이 포기할 용기도 있어야 한다. 노력은 해보지만 나도 솔직히 쉽지 않다.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의식적으로 더 하려고 노력하는 정도일뿐. 중요하지만 쉽진 않다. 그래도 노력은 해봐야하지 않겠나.

Posted by Jason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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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든, 후배든 선배든 .. 누군가 갑자기 생각나면 그냥 안부 인사라도 해보자. 내가 먼저 연락하면 '없어 보인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 먼저 해보자. 사람은, 그 사람의 존재만으로 이미 소중한거다.

Posted by Jason7

트루(true) 보수 인증 제도


정치인에게 부여하는 '보수' 인증 제도가 있었으면 좋겠다. 말로만 자신을 보수라고 부를 수 없도록, 보수적 가치를 쫓아 진짜 보수적 행보를 보인 정치인에게 "당신을 이제부터 참 보수로 인정합니다." 와 같은 그런 <트루(true) 보수 인증 제도>가 생겼으면 좋겠다. '참 잘했어요'의 정치인 버전이랄까. 자신과 가족들이 군복무와 같은 국민의 보편적 의무를 성실히 잘 이행하고, 국가유공자를 비롯하여 군인, 경찰, 소방관과 같이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을 위해 예우하려고 노력하는 행동. 그리고 본인이 사회를 위해 어떤 방식으로든 꾸준히 봉사해온 사람. 꼼수가 아니라 법과 원칙을 지키고자 노력한 사람. 그런 행적을 투명하게 보여주고 인정받는 사람만을 대상으로 '트루 보수', '참 보수'라고 인정해주는 것이 어떨까?

지금처럼 아무나 보수라고 부르게 되면 진짜 보수의 품격이 떨어진다. 보수라는 가치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다.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는거 아니다. 자신을 보수라고 부르는 이들은 스스로에게 냉엄하게 물어야 한다.

- 법과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했는가?
- 국가와 사회를 위해 헌신했는가?
- 국방, 납세와 같이 내게 주어진 의무를 성실히 이행했는가?

지금 자신을 보수라고 자처하는 정당과 정치인 상당수가 이 질문에 뭐라 대답할지 정말 궁금하다. 이상의 질문에 당당하게 대답하지 못한다면, 자신을 보수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언론도 정신 차려야 한다. 어떤 사람이 진짜 보수인지 구분도 못하고, 불러주는대로 기사 쓰면 그것은 언론이 아니라 특정 이익 집단을 대변하는 '기관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제라도 알아야 한다. 가짜 보수, 가짜 언론들은 부끄러운 줄 알았으면 좋겠다.

Posted by Jason7

"On 갑질 (갑질론)"


1. 사회학자든 인류학자든 한국 사회의 갑질 문화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를 꼭 해주었으면 좋겠다. 아마 제목은 '갑질론(On 갑질)', '갑질의 기원(origin)', '갑질의 정치경제'가 되지 않을까 싶다. 어떤 제목이든 좋다.

2. 단순히 특정인의 일탈이 아니라 갑질을 '문화'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모 육군 대장과 부인의 갑질, 모 대학 교수의 갑질 등 소위 갑질이라는 행위가 특정인의 일탈이 아니라 한국 사회에 만연한 행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정하기 쉽지 않겠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은 자신보다 조금이라도 상대적으로 약자인 사람에게, (계약에 따라서) 그 사람이 해주어야 하는 것 이상을 하도록 권력을 행사하거나 또는 그것을 요구하고 그러한 행위를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이는듯 하다. 손님은 왕이니까.

3. 식당에서 종업원에게, 백화점에서 직원에게, 목사는 성도에게, 학교에서 학생에게, 아파트에서 경비원에게, 택배 기사에게 그래 왔다. 단지 군대 내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주 소수의 사람들, 기득권만의 문제도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갑질하는 것이 아니다. 문화라고 얘기해도 될 만큼 다양한 형태, 다양한 정도의 차이가 있는 갑질이 존재해 왔고, 우리도 다른 누군가에게 갑질을 해왔지만 그것을 잘 인식하지 못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우위라는 생각이 들면 어떻게든 대접을 받으려고 하는 심리, 그게 참 무섭다고 생각한다.

4. "억울하면 성공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데 이 표현이 한국 사회 갑질 문화의 근저에 있는 무엇가를 표출하는 것이 아닐까. 경제적, 사회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사람은 (갑질을 포함하여) 억울한 일을 많이 당한다는 사회 현실에 대한 인식을 대다수의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다. 공정하지 못한 사회, 지금보다 더 높은 위치에 올라가야 대우받고 서러운일 당하지 않는 사회에서 갑질 당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갑질할 수 있는 위치로 올러서는 것이다.

5. 우리 사회의 갑질 문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한국 사회 고유의 전통적인 문화가 지금의 갑질 문화의 형성에 기여한 것일까? 일본의 식민 지배, 해방 후 군사정권의 정치나 문화, 사회와 정치 문제를 덮어둔채 내달렸던 성장 중심의 경제발전은 갑질 문화의 태동 또는 발전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갑질이 문화적 현상으로까지 보편화된 것은 어떤 이유 때문일까? 누군가 꼭 연구를 해주었으면 좋겠다. 갑질을 '그들'만의 문제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우리들의 문제가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Posted by Jason7

<미군부대에서 카투사로 복무하면서 경험한 리더십>

1. 4성 장군 박찬주 대장 부부의 갑질로 한국군 리더십에 대한 불신이 크다. 아직 청산되지 못한 왜곡된 위계질서가 드러난 사례가 아닐까 생각한다. 여전히 남성 지배적인 한국 사회에서 군생활의 경험은 사회에도 미치는 영향이 크다. 이 글은 주관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했으며 미군이 한국군보다 모든 점에서 뛰어나다는 논리가 아니다. 징병제인 한국과 모병제인 미국을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미군에서 리더들이 하급자인 사병을 어떻게 대하는지 한 번 생각해봤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글을 올린다. 여전히 우리 군에도 훌륭한 리더들이 많다. 그들의 노력으로 여기까지 왔고 앞으로 더 나은 군으로 변모할 것을 믿는다. 박 대장 사건으로 국가를 위해 동료와 부대원들을 위해 성실하게 복무하며 땀흘리는 훌륭한 군인들의 노력이 주목받지 못하는 것이 정말 안타깝다. 숨은 일꾼들을 조명하는 기사도 많아졌으면 좋겠다.

2. 미군부대에서 근무하면서 가장 충격 받았던 것은 계급이 올라갈수록 일을 더 열심히 그리고 오래 한다는 것이다. 한국군에서는 (사병의 경우) 진급할수록 일을 적게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을 더 많이 한다고 내게 주어지는 인센티브가 없으니까. 하지만 미군 부대에서는 얘기가 다르다. 마지막까지 남아서 모든 일을 마무리하는 사람은 이등병이 아니라 가장 계급이 높은 사람이다. 그들은 계급이 낮을수록 비교적 단순한 일만 시키고 하급자들을 퇴근시킨 후 나머지 일을 상급자들이 처리한다. 계급이 높으면 더 많은 보수를 받으니까 하급자보다 더 잘해야 하고 더 많이 일을 해야 한다는 인식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듯 하다.

3. 훈련을 나가거나 근무 중일 때 식사 시간이 되면, 가장 계급이 낮은 사람부터 식사를 하도록 하고, 계급이 높은 사람은 맨 마지막에 식사를 하거나 시간이 부족하면 끼니를 거르기도 한다. 그런 경우가 잦았다. 내 경우, 순찰을 하다가 같이 일하는 미군 파트너의 계급이 낮으면 먼저 식사하도록 하고 시간이 부족하여 내가 식사를 못한 경우도 있다. 계급이 낮은 사람을 먼저 챙기는 문화, 군대에서 그게 가능하다는 것이 놀라웠다. 일부 한국군 부대에서 사병들을 위해 도서관을 만드는 시도는 매우 긍정적이라고 본다. 자신이 존중받는다고 느끼면, 무슨 일이든 더 열정적으로 하게 된다.

4. 미군은 사소하던 크던 자신이 무언가를 책임지고 있다는 것을 매우 자랑스러워한다. 이러한 인식은 전문성(professionalism)에 기반하는 것으로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프로답게 수행하는 것을 최고의 덕목으로 꼽는다. 따라서 어떤 작전을 수행하거나 주어진 업무를 수행하는데 있어서 외부인이나 타 부대에서 온 사람이 “여기 책임자가 누구입니까?” 라고 물었을 때 “제가 책임자입니다.”라고 매우 자랑스럽게 얘기를 하며 책임자가 당당하게 등장한다. 최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일부 우리 군(사회)의 모습과는 사뭇 차이가 있다.

5. 그들은 "책임진다는 것"의 의미를 우리와 조금 다르게 받아들이는 듯 하다. 한국에서는 어떤 일에 책임을 진다는 것은 그것이 잘못되었을 때를 생각하여 최대한 회피해야할 것으로 보지만, 미군에서는 자신이 어떤 일이나 임무에 대해 책임짐으로써 프로 정신을 인정받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적어도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일, 또는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대해 누구보다 프로 의식과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며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을 아주 기꺼이 받아들인다. 상급자의 명령에 따르는 것은 군에서의 위계적 명령이기도 하지만, 상급자가 보여주는 전문성에 대한 존중이기도 하다. 자신보다 능력 면에서, 책임성에서 뛰어난 상급자에 대한 존중이 위계질서를 구성하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6. 미군에서는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부대원 전체가 달리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때 가장 선두에 서는 사람은 이등병이 아니라 부대장과 원사(하사관)다. 나이 50이 이미 훌쩍 넘은 그들이 가장 선두에서 큰 목소리로 군가를 선창하고 최선을 다해 뛴다. 땀이 비오듯 쏟아지는데도 낙오하지 않고 끝까지 완주하는 모습, 정말 감동적인 장면이다. 리더란 그런 것이다. 이런 비교를 하는 것이 너무 비참하지만, 그래도 상상을 해보자. 한국군 장군들 중에서, 계급이 높은 하사관들 중에서 그렇게 선두에서 달리며 목청 높여 군가를 부를 수 있는 군인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7. 계급이 높거나 권한이 있다고 그것을 개인적 이익을 위해 남용하는 일은 미군에서 별로 없었던 기억이 난다. 공적 권한을 사적 영역으로 확대했을때 그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 누군가 그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번은 내가 미군 사병에게 이렇게 물어본 적이 있다. 한국군에서는 하사관이나 장교가 이사할때 사병들을 부려먹는 일이 빈번하다. "만약 당신의 상관이 그런 일을 시킨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물어봤다. 그 친구의 대답은 "Fxxx you"라고 말한다였다. 한국군의 고위직 예를 들어 장군들은 사병인 운전병을 밤 늦은 시간이던 주말이던 아주 열심히 부려먹었다. 이번에 문제가 된 갑질 논란처럼. 피치 못할 공무를 위해 운전병이 그들과 함께할 일이 있을수 있지만, 모든 일이 공무는 아니었을 것이다. 어느 대위는 자신의 대학원 과제를 카투사에게 시키기도 했다. 물론 모든 한국군 상급자가 그러진 않았겠지만 대체로 공과 사가 잘 구분되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사병은 구조적인 약자인데, 일부 하사관이나 장교는 그 점을 잘 악용하였다.

8. 메인 게이트에서 근무중일때 특별한 경험을 했다. 주한미군의 총책임자인 리언 라포트 연합사령관(4성장군)은 자신의 관용차로 BMW 7시리즈를 사용하고 있었다. 주말이었다. 낡은 국산차인 대우 에스페로 한 대가 유유히 다가오더니 내 앞에서 멈췄다. 그리고 한 노인이 내게 신분증을 건넸는데 ..... 그는 바로 라포트 4성장군이었다! 주한미군 끝판왕 미군 4성장군이라니!!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평소처럼 운전병 불러서 관용차를 타고 오면 신분증 확인도 하지 않고 무사통과에 편하게 갈 수 있었던 그가 손수 운전하며 신분증 확인을 받는 불편함을 감수한 것이다. 그것도 군인 서열로 대한민국 No.1인 4성장군이 .. 미군 장군들은 업무 시간 이후에 자신의 차를 타고 다니는 것을 종종 목격하였다. 하지만 한국군 장군이 자신이 직접 운전을 하면서 신분증을 내미는 경우는 단 차례도 목격하지 못했다. 그들은 그래야 할 필요성을 전혀 못느꼈을 것이다.

9. 한 번은 용산 부대 내에서 고위직 장군의 이취임식이 열렸다. 헌병으로서 나는 그 날 이취임식에 참석하는 한국군, 미군 장군들과 내외빈 손님을 안내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3성 장군 이상만 차를 타고 행사장으로 입장할 수 있고, 그 이하 계급은 걸어서 들여 보내라는 헌병 대장의 지시가 있어서 그렇게 안내를 하고 있었다. 미군은 단 한 명도 대놓고 불만을 표시하지 않았는데, 한국군 원스타 차량이 내 앞에 멈춰서더니, 장군은 없고 그 부인이 내게 통과시켜달라고 요구하는 일이 있었다. 원칙대로 얘기하며 그럴 수 없다고 말하자, 그 부인은 내가 카투사인 것을 알아차리더니 내 이름을 적어서 한국군 부대에 말하겠다고 나를 협박했다. 나는 쫄지 않고 그러시라고 당당하게 얘기했다. 그렇게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한국군에서 나를 징계하려 해도, 나는 원칙을 지켰기 때문에 적어도 미군 측에서는 그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것이라는 강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갑질이 원칙을 이길수는 없다.

10. 카투사로 복무하지 않았더라면 직급이 낮거나 나이가 어린 사람을 대하는 나의 사고방식과 행동은 지금과 많이 달랐을 것 같다. 아랫사람에게 대접 받고, 마음대로 부려먹는 것을 마치 성공한 직장 상사나 상급자로서 당연히 누려야 하는 특권이나 권리처럼 여겼을지도 모르겠다. 아랫사람을 마음껏 부리면서도 책임지지 않는 갑질, 적어도 미군 부대에서 이러한 갑질은 보편적인 것이 아니었다. 계급이나 직급, 나이로 상대방을 강요하며 자신을 따르도록 하는 리더십을 별로 경험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책임을 충분히 다함으로써 리더십은 발휘된다. 모범을 보이고 열심히 먼저 하면 다른 사람은 자연스럽게 그 사람을 따라 간다.

11. 내가 이등병이었을 때 나를 격려했던 미군 병장과 하사의 진심어린 말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영어를 잘 하지 못해서 벙어리처럼 지냈고, 체력 또한 좋지 않아 아침 훈련 때마다 사실상 낙오자 대열에서 뛰었던 내 옆에서 끝까지 함께 뛰면서 그들은 나를 결코 버리지 않았다. 그들은 언제나 내 역할을 존중해주었으며 내가 성장할때까지 묵묵히 기다려주었다. 그들은 내가 “최고의 카투사가 될 것이다”고 말하며 내게 용기를 주었고, 나는 정말 악착같이 하루 하루를 열심히 보냈다. 그리고 내가 상병이 되자마자 나는 미군 두 명을 인솔하는 팀리더가 되었다. (당시 우리 부대에서 카투사는 병장이 되어야 팀리더가 되었다.) 내게 용기를 주었던 미군들처럼 나도 내 팀에 속한 하급자들에게 모범이 되고자 정말 열심히 노력했다. 마지막 휴가를 떠나는 전날까지도 게으름 피우지 않고 열심히 근무했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아주 어버버하던 시절, 내게 진심어린 말로 격려해주었던 미군들의 말이 정말 고맙다. 많이 실수하고 당장의 결과가 좋지 않았지만 그들은 내게 희망을 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내가 더 잘할수 있을때까지 기다려주었다.

12. 솔선수범과 책임감에 기반한 리더십, 그리고 그것을 따라가는 사람들 사이에는 강한 연대감이 형성되며 건강한 시너지가 발생한다. 나에게 용기를 주었던 미군 상관들은 내가 징병제로 군에 왔고, 나를 마음껏 부려 먹어도 내가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나의 존재와 역할을 존중해 주었다. 우리 군에도, 그리고 우리 사회에도 내가 경험했던 덕목을 갖춘 리더들이 더 많아지길 기대한다. 묵묵하게 최선을 다하는 리더들이 지금보다 더 주목 받았으면 좋겠다. 더 많은 권한을 가진 최상위 상급자들이 자신이 누려왔던 당연한 '갑질', '특혜'를 먼저 내려 놓고, 당연히 그래야 하는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부터 시작했으면 좋겠다.

Posted by Jason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