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속한 헌병 중대 중에서 용산에는 두 개의 소대 밖에 없었다. 즉, 용산으로 파견된 소대인 것인다. 그리고 그 중 카투사는 총 스무 명 남짓. 각 소대 당 10명 꼴이다. 헌병은 자대 배치를 받으면 총 3주간의 OJT(On the Job Training)을 한다. 즉 육군에서 말하는 후반기 교육(특기병 교육)을 말한다. 헌병 근무를 위해 알아야 할 기본적인 지식을 습득하는 교육이다. 헌병 생활에서 쓰이는 기본 용어, 무전기 사용 용어, 군사 지식 등 3주 동안에 여러 가지를 배운다. 물론 실무를 접하기 전까지는 무슨 내용이었는지조차 기억하기 힘들지만.

그저 매일 백과사전 같은 두꺼운 책을 보면서 그냥 읽기만 했다. 그리고 그게 끝나면 하루 종일 군화만 닦고 군복만 다렸다. 그게 하루의 생활이었다. 그리고 이곳 저곳 다니면서 ‘In processing’ 이라는 것을 했다. 미군부대에서 생활하기 위해 하는 일종의 등록 절차이다. 예를 들어 도서관에서 책을 볼 수 있도록 도서관 카드를 만들고, 실내 체육관에 신규 회원(?)등록을 하고 건강 기록을 만들고 하는 등 군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업무이다. 그리고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총을 등록하는 절차도 포함된다.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총에 대해 각각 한 장씩 Weapon Card 라는 것이 발급되며 이 카드를 제시하면 내가 등록한 총을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다.

춘천으로

내가 속해 있는 중대 본부는 춘천 Camp Page에 있기 때문에 그곳에 가서 나를 관리하고 있는 한국군 장교인 지원대장에게 인사를 하고 여러 가지 필요한 것을 보급 받았다. 화생방 장비(NBC Gear라고 한다. 방독면-Gas Mask, Training Mopp suit, Live or Real Mopp suit 등)와 헌병의 경우 피스톨 벨트(권총을 피스톨이라고 부른다. 각종 장비를 달 수 있는 굵직한 검정 벨트), 권총 케이스, 수갑 및 수갑 케이스, 수갑 키, 후레쉬 라이트, 곤봉, 무전기 케이스, 비닐 장갑(사건 현장에서 사용하는 장갑), M9 Ammo Pouch 등을 받는다. 이것들은 잃어버릴 경우 직접 돈으로 물어 내야하기 때문에 주위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폭설이 내리던 어느날 춘천 Camp Page에서>

TA-50

그리고 용산에 다시 와서 TA-50 라는 것을 보급받았다. 더플백(군용 대형 가방), Bear Suit (곰돌이 옷인데 따뜻하긴 하나 좀 불편함), Cold weather boots (겨울용 부츠), Coretex (고어텍스), Ruck Sack (군용 배낭) 등 여러 가지 장비와 물품을 보급 받았다. 이것들은 실제 군생활에서 자주 쓰는 것들이고 훈련 갈 때 꼭 필요한 군용품들이다. 너무 많아서 일일이 나열하기는 힘들다. 보급 후 리스트가 나오는데 가끔 이 물건들이 잘 관리되고 있는지 불시에 소대별로 점검을 하는 경우가 있다. 하나라도 없으면 새로 사야 하고 장비가 지저분하다거나 불량일 경우 ‘시정’해야 한다. 대부분 훈련을 앞두거나 훈련 직후 이런 점검이 이루어지는데 평소에 잘 관리해 두는 것이 상책이다. 

이렇게 모든 장비를 받고 나니 더더욱 정신이 없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허리조차 펴지 못하고 주눅들어 있을 내 육군훈련소 한국군 동기들을 생각하면 오히려 미안한 생각이 들 뿐이다. 똑같이 비지땀 흘리며 훈련 받았지만 서로 다른 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모습이 때론 부끄럽기까지 하다.

첫 패스 (휴가)

집에 간다는 것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용산역에서 TMO를 타고 고향으로 향했다. 한국군도 아니고 일본군도 아니고 이상한 군복을 입고 이상한 모자를 쓰고 다니는 내 모습은 어딜 가나 관심의 대상이었다. 하긴 나도 이런 이상한 미군복을 처음 입어보는 것이어서 왠지 쑥쓰럽기도 했다.

'뭐야! 저 쉨끼.. 혹시 특공대 아녀? '

같이 있던 한국군 중. 이렇게 나를 바라보는 친구들도 있었다.

달콤한 휴가를 마치고 부대에서 입을 사복과 간단한 물건들을 챙겨서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미군 부대에서는 근무 시간 이외에는 사복을 입는다. 외출이나 외박을 하게 되는 경우에도 사복을 입는다. 그래서 첫 휴가 때 사복을 챙겨오는 게 관례인데 우리 같은 경우 신병은 짬이 없기 때문에 호출기를 사용한다. 혹시 외출 나갔을 경우 비상이 걸리면 연락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짬이 있는 고참은 물론 무선 전화기(?)를 사용한다는 전설이 있다. 한때 그랬다는 정도일뿐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니까. 물론 무선 전화기 사용은 육군에서 허가하지 않는다. 호출기에 대해 말하자면, 실제로 새벽 3~4시에 비상이 걸리는 경우가 많고 모든 게 불규칙한 헌병 생활에서 호출기는 필수일 수 밖에 없다. 아침까지만 해도 오늘이 쉬는 날인데 점심 먹고 오니 저녁 근무로 바뀌는 상황이 부지기수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고참들은 뭘 하는 걸까?

내가 신병 때 고참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다. 왜냐고? 고참을 거의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우리 소대는 밤근무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아침에 눈을 떴을 때는 아무도 없었고, 오전에 내가 교육을 받을 즈음 고참들은 근무를 마치고 들어와서 말없이 모두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OJT 교육을 마치고 저녁이 될 때쯤이면 그들은 밤근무를 나가기 때문에 얼굴조차 볼 수 없다. 어떤 때는 새벽부터 우르르 몰려나가고는 훈련이라면서 몇일 동안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남은 사람이라곤 나를 교육시키는 선임병장과 나 단 둘 뿐. 난 그 때 내 고참들이 뭘 하는지 몰랐다. 왜 그렇게 바쁘게 움직이고 어딜 가는지... 왜 낮에만 잠을 자는지. 도무지 몰랐다.

11월 말. 첫 후임병을 맞이하다.

마침내 내 쫄(후임병)이 들어왔다. 너무 기뻤다.

'앗싸~~~'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난 그때부터 소대로 투입되어 진짜 헌병으로 살아가기 시작했다. 이제부터는 교육이 아니라 실전이다.

첫 근무

Motor Pool (차량 정비소: 차량을 주차하며 여러 가지 장비를 저장하는 장소이다.)에서 몇 명의 미군들과 간단하게 작업을 했다. 비교적 쉬운 일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여유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Posted by Jason7

2000년 11월 2일.

난 용산으로 자대 배치 받았다.

“MOS (Military Occupational Specialty: 군사주특기) 95B.”

순찰헌병이라는 것. 그 순간 카투사에 헌병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았다. 그리고 ‘95B’라는 주특기가 MP(Military Police)라는 것도. 전체 동기 중에서 용산 헌병으로 가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다. 용산에 배치 받은 내 동기들은 모두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하지만 난 기분이 좀 찝찝했다. 내가 무슨 일을 하러 가는 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저 조금 두려울 뿐이었다. 아무도 헌병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단지 KTA 구석 구석에 헌병에 대한 얘기가 전설로만 남아 있었을 뿐.

용산행 지하철

점심을 먹고 우리는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쪽팔리게 무슨 지하철역? 그렇다, 진짜 쪽팔렸다. 다른 친구들은 버스 타고 군용 트럭타고 가는데 용산으로 가는 우리는 쪽팔리게 두 줄로 쭉 걸어서 지하철역까지 걸어갔다. 지나가는 아줌마, 애들이 다 쳐다본다. 쟤네도 군인이냐고. 그리고 적당히 흩어져 용산행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 안에서도 마찬가지. 우리는 별 말이 없었다. 당시의 쪽팔림을 무엇으로 설명하리.

드디어 용산역에 도착했다. 용산역 앞에는 버스 두 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보직에 따라 각 선임 병장들이 신병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무뚝뚝하게 생긴 한 병장. 그는 내 이름을 부르더니 아무런 말없이 버스에 올라탔다. 그리고 나도 그의 옆에 말 없이 앉았다. 뒷자석에서는 고참과 신병이 자연스럽게 얘기하며 분위기가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내 옆에 있는 그 고참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버스가 용산역을 떠나 용산 미군기지 South Post를 통과했다. 멋지게 생긴 호텔이 보이고 골프장이 보이고 학교 같은 건물들도 보였다. 외국애들도 많이 보여서 여기가 미국인 것 같았다. 모든 것이 정말 신기했다. 전혀 한국이라는 생각이 안 들었다. 모든 것이 낯설고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이곳이 그 동안 내가 살았던 한국이라니. 그리고 버스가 Main Post로 진입했다. 쭉 직진해서 언덕을 올라가는가 싶더니 맨 꼭대기에서 멈추었다. 그리고 내 옆에 목석처럼 앉아 있던 고참이 마침내 입을 열더니.

"야! 내려!" 

부랴부랴 내렸다.

새 보금자리

그렇다. 우리(헌병) 막사는 용산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있다. 그것부터가 기분 나빴다. 하지만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일. 이미 나는 헌병이 되었다. 고참을 따라 막사에 들어갔다. 복도도 있고 정말 이상한 건물 같다. 화장실도 깨끗하고 외국애들도 보이고. 2소대라고 한다. 2소대 선임하사를 만나고 난 후 내가 2소대라는 것을 실감했다. 그는 마치 옆집 쌀집 아저씨처럼 편안하게 생겼던 선임하사. 잠시 인사를 나누고 방으로 갔다.

내 방. 내 방은 바로 위 고참과 그 위 고참이 함께 쓰는 3인 1실의 방이다. 거기서 내 자리는 침대와 4 drawer(네 칸짜리 옷장) 달랑 하나. 그것이 내 공간의 전부였다. 옆에는 두 개의 커다란 Wall Locker(일종의 장롱처럼 생김)가 가로막고 있어서 낮에도 불을 켜야 겨우 볼 수 있을 정도다. 한마디로 맨 구석에 있는 조그만 공간. 그게 내 방이었다. 그래도 좋았다. 한국군 부대와 비교하면 이곳은 천국이다.

선임병장의 말에 따라 침대에 담요를 깔고 KTA에서처럼 각을 잡았다. 그리고 그 날 저녁 내 방에 있는 고참들이 내 군화와 군복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어리버리하게 빛나던 내 군화가 헌병 고참의 손을 거친 후 마치 불이 나듯 광이 나기 시작했다. 군화에 해가 떴다.


'과연 저게 바로 말로만 듣던 헌병의 광(光)이란 말인가?'

말로만 듣던 헌병의 광(光)을 실제로 경험한 순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군복 또한 예술이었다. 골판지를 만지는 듯한 빳빳함과 이 예리하고도 미세한 각. 머리가 아파왔다. 이제 내가 저짓거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뒷골이 땡겼다.

그렇게 용산에서의 첫날이 지났다.

용산 미군기지는 크게 메인 포스트(Main Post)와 사우스 포트스(South Post)로 구성되어 있다. 메인포스트 최북단(?)에 위치한 일명 헌병의 언덕(헌병대 막사)을 꺾어 내려가면 Camp Coiner라는 조그만 캠프에 당도하게 된다. 용산 기지에는 하나의 조그만 도시라고 해도 무관할 정도로 매우 크며 다양한 시설들이 있다. 병원, 초중고등학교 및 대학교(분교), 도서관, 체육관, 축구장 및 골프장과 미식 축구장에서부터 호텔, 나이트 클럽과 버스 정류장 등 수 많은 시설들이 있고, 게이트(부대 출입구)도 수 십 개에 이른다. 미군은 직업 군인이기 때문에 이렇게 다양한 편의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그 수준도 왠만한 한국의 시설보다 더 좋다. 한국군은 의무 복무이기 때문에 대충 지원해줘도 된다는 생각때문인지 한국군 사병이 받는 전반적인 지원은 정말 열악하다.

Posted by Jason7

6주 동안의 논산훈련소 신병 교육을 마치고 의정부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다. 카투사의 경우 6주 간의 기본 군사훈련을 논산에서 받는데 일반 육군 훈령병과 함께 동일한 훈련을 받는다. 이후 KTA (KATUSA Training Academy)라는 미군 신병 훈련소에서 3주간의 교육을 받은 후 자대로 배치된다. 당시 KTA는 의정부 캠프 잭슨(Camp Jackson)에 위치해 있었다.

6주만의 첫 외출. 특히 서울 도심에 위치한 훈련소라는 점에서 그곳에 간다는 사실에 얼마나 설레였던지. 기차 역에서 내려 걸어서 KTA까지 갔을 때의 그 감흥은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는다. 꿈에 그리던 그곳에 드디어 당도하게 된 것이다!

<KTA에서 동기들과 함께>


한국 속의 또 다른 나라 ‘미군부대’

KTA. 그곳은 나에게 첫 미군부대였다. 이제껏 한 번도 미군부대에 들어가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그곳은 매우 충격적인 곳이었다. 한국 속의 또 다른 나라 ‘미군부대’. 이곳이 한국이라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처음 보는 미군 군복에 독특한 막사, 음식, 장비들을 접하면서 ‘나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기도 했으며 미국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국력이 대단한지 몸소 체험하게 되었다. 천조국의 위엄을 몸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생소한 군대 용어를 영어로 익히려니 고충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영어시험, PT Test(체력시험), 군사시험 등 3주라는 짧은 기간에도 다양한 시험이 우릴 괴롭혔고 가장 긴장되었던 순간은 바로 보직과 자대 배치. 훈련소 곳곳에 남겨진 전설 같은 글들을 통해 익히 들었던 최악의 보직들. 전투병, 헌병 등. 이것만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에 추첨 전날은 천 마리까지 양을 세고도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긴장되었다.


<KTA에서 졸업식 사진들>

그리고 추첨 날짜가 다가 왔다.

환호와 아쉬움, 그리고 절망이 교차하는 이 미묘한 순간. 2사단 전투병에 당첨되어 마치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던 친구들. 용산에 배정 받아 웃음꽃이 활짝 핀 친구들. 이렇게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 나는 다행히 용산에 배정 받았다. 그러나 뭔가 꺼림칙한게 있으니 바로 보직이 ‘(순찰)헌병’. 어, 이게 뭐지?

헌병?

용산은 용산인데 카투사 헌병은 무엇인고? 내 동기 중에서 유일하게 나 혼자 용산 헌병으로 발탁(?)이 되었다. 용산으로 향하는 수 십 명의 동기 중 나 혼자 헌병이다. 용산이라 웃어야 할 지 헌병이라 울어야 할 지. 같은 소대에서 친했던 한 친구는 2사단 헌병으로 갔기에 용산 가는 길이 그리 기쁘지는 않았다. 그리고 카투사에서 헌병이 무슨 일을 하는 것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설마 한국군 헌병처럼 매일 보초만 서는 것은 아니겠지.

‘용산’ 그리고 ‘헌병’.

혼란스러웠지만 무엇보다 혼자라는 사실이 가장 두려웠다.

Posted by Jason7

<미군부대에서 카투사로 복무하면서 경험한 리더십>

1. 4성 장군 박찬주 대장 부부의 갑질로 한국군 리더십에 대한 불신이 크다. 아직 청산되지 못한 왜곡된 위계질서가 드러난 사례가 아닐까 생각한다. 여전히 남성 지배적인 한국 사회에서 군생활의 경험은 사회에도 미치는 영향이 크다. 이 글은 주관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했으며 미군이 한국군보다 모든 점에서 뛰어나다는 논리가 아니다. 징병제인 한국과 모병제인 미국을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미군에서 리더들이 하급자인 사병을 어떻게 대하는지 한 번 생각해봤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글을 올린다. 여전히 우리 군에도 훌륭한 리더들이 많다. 그들의 노력으로 여기까지 왔고 앞으로 더 나은 군으로 변모할 것을 믿는다. 박 대장 사건으로 국가를 위해 동료와 부대원들을 위해 성실하게 복무하며 땀흘리는 훌륭한 군인들의 노력이 주목받지 못하는 것이 정말 안타깝다. 숨은 일꾼들을 조명하는 기사도 많아졌으면 좋겠다.

2. 미군부대에서 근무하면서 가장 충격 받았던 것은 계급이 올라갈수록 일을 더 열심히 그리고 오래 한다는 것이다. 한국군에서는 (사병의 경우) 진급할수록 일을 적게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을 더 많이 한다고 내게 주어지는 인센티브가 없으니까. 하지만 미군 부대에서는 얘기가 다르다. 마지막까지 남아서 모든 일을 마무리하는 사람은 이등병이 아니라 가장 계급이 높은 사람이다. 그들은 계급이 낮을수록 비교적 단순한 일만 시키고 하급자들을 퇴근시킨 후 나머지 일을 상급자들이 처리한다. 계급이 높으면 더 많은 보수를 받으니까 하급자보다 더 잘해야 하고 더 많이 일을 해야 한다는 인식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듯 하다.

3. 훈련을 나가거나 근무 중일 때 식사 시간이 되면, 가장 계급이 낮은 사람부터 식사를 하도록 하고, 계급이 높은 사람은 맨 마지막에 식사를 하거나 시간이 부족하면 끼니를 거르기도 한다. 그런 경우가 잦았다. 내 경우, 순찰을 하다가 같이 일하는 미군 파트너의 계급이 낮으면 먼저 식사하도록 하고 시간이 부족하여 내가 식사를 못한 경우도 있다. 계급이 낮은 사람을 먼저 챙기는 문화, 군대에서 그게 가능하다는 것이 놀라웠다. 일부 한국군 부대에서 사병들을 위해 도서관을 만드는 시도는 매우 긍정적이라고 본다. 자신이 존중받는다고 느끼면, 무슨 일이든 더 열정적으로 하게 된다.

4. 미군은 사소하던 크던 자신이 무언가를 책임지고 있다는 것을 매우 자랑스러워한다. 이러한 인식은 전문성(professionalism)에 기반하는 것으로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프로답게 수행하는 것을 최고의 덕목으로 꼽는다. 따라서 어떤 작전을 수행하거나 주어진 업무를 수행하는데 있어서 외부인이나 타 부대에서 온 사람이 “여기 책임자가 누구입니까?” 라고 물었을 때 “제가 책임자입니다.”라고 매우 자랑스럽게 얘기를 하며 책임자가 당당하게 등장한다. 최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일부 우리 군(사회)의 모습과는 사뭇 차이가 있다.

5. 그들은 "책임진다는 것"의 의미를 우리와 조금 다르게 받아들이는 듯 하다. 한국에서는 어떤 일에 책임을 진다는 것은 그것이 잘못되었을 때를 생각하여 최대한 회피해야할 것으로 보지만, 미군에서는 자신이 어떤 일이나 임무에 대해 책임짐으로써 프로 정신을 인정받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적어도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일, 또는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대해 누구보다 프로 의식과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며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을 아주 기꺼이 받아들인다. 상급자의 명령에 따르는 것은 군에서의 위계적 명령이기도 하지만, 상급자가 보여주는 전문성에 대한 존중이기도 하다. 자신보다 능력 면에서, 책임성에서 뛰어난 상급자에 대한 존중이 위계질서를 구성하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6. 미군에서는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부대원 전체가 달리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때 가장 선두에 서는 사람은 이등병이 아니라 부대장과 원사(하사관)다. 나이 50이 이미 훌쩍 넘은 그들이 가장 선두에서 큰 목소리로 군가를 선창하고 최선을 다해 뛴다. 땀이 비오듯 쏟아지는데도 낙오하지 않고 끝까지 완주하는 모습, 정말 감동적인 장면이다. 리더란 그런 것이다. 이런 비교를 하는 것이 너무 비참하지만, 그래도 상상을 해보자. 한국군 장군들 중에서, 계급이 높은 하사관들 중에서 그렇게 선두에서 달리며 목청 높여 군가를 부를 수 있는 군인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7. 계급이 높거나 권한이 있다고 그것을 개인적 이익을 위해 남용하는 일은 미군에서 별로 없었던 기억이 난다. 공적 권한을 사적 영역으로 확대했을때 그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 누군가 그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번은 내가 미군 사병에게 이렇게 물어본 적이 있다. 한국군에서는 하사관이나 장교가 이사할때 사병들을 부려먹는 일이 빈번하다. "만약 당신의 상관이 그런 일을 시킨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물어봤다. 그 친구의 대답은 "Fxxx you"라고 말한다였다. 한국군의 고위직 예를 들어 장군들은 사병인 운전병을 밤 늦은 시간이던 주말이던 아주 열심히 부려먹었다. 이번에 문제가 된 갑질 논란처럼. 피치 못할 공무를 위해 운전병이 그들과 함께할 일이 있을수 있지만, 모든 일이 공무는 아니었을 것이다. 어느 대위는 자신의 대학원 과제를 카투사에게 시키기도 했다. 물론 모든 한국군 상급자가 그러진 않았겠지만 대체로 공과 사가 잘 구분되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사병은 구조적인 약자인데, 일부 하사관이나 장교는 그 점을 잘 악용하였다.

8. 메인 게이트에서 근무중일때 특별한 경험을 했다. 주한미군의 총책임자인 리언 라포트 연합사령관(4성장군)은 자신의 관용차로 BMW 7시리즈를 사용하고 있었다. 주말이었다. 낡은 국산차인 대우 에스페로 한 대가 유유히 다가오더니 내 앞에서 멈췄다. 그리고 한 노인이 내게 신분증을 건넸는데 ..... 그는 바로 라포트 4성장군이었다! 주한미군 끝판왕 미군 4성장군이라니!!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평소처럼 운전병 불러서 관용차를 타고 오면 신분증 확인도 하지 않고 무사통과에 편하게 갈 수 있었던 그가 손수 운전하며 신분증 확인을 받는 불편함을 감수한 것이다. 그것도 군인 서열로 대한민국 No.1인 4성장군이 .. 미군 장군들은 업무 시간 이후에 자신의 차를 타고 다니는 것을 종종 목격하였다. 하지만 한국군 장군이 자신이 직접 운전을 하면서 신분증을 내미는 경우는 단 차례도 목격하지 못했다. 그들은 그래야 할 필요성을 전혀 못느꼈을 것이다.

9. 한 번은 용산 부대 내에서 고위직 장군의 이취임식이 열렸다. 헌병으로서 나는 그 날 이취임식에 참석하는 한국군, 미군 장군들과 내외빈 손님을 안내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3성 장군 이상만 차를 타고 행사장으로 입장할 수 있고, 그 이하 계급은 걸어서 들여 보내라는 헌병 대장의 지시가 있어서 그렇게 안내를 하고 있었다. 미군은 단 한 명도 대놓고 불만을 표시하지 않았는데, 한국군 원스타 차량이 내 앞에 멈춰서더니, 장군은 없고 그 부인이 내게 통과시켜달라고 요구하는 일이 있었다. 원칙대로 얘기하며 그럴 수 없다고 말하자, 그 부인은 내가 카투사인 것을 알아차리더니 내 이름을 적어서 한국군 부대에 말하겠다고 나를 협박했다. 나는 쫄지 않고 그러시라고 당당하게 얘기했다. 그렇게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한국군에서 나를 징계하려 해도, 나는 원칙을 지켰기 때문에 적어도 미군 측에서는 그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것이라는 강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갑질이 원칙을 이길수는 없다.

10. 카투사로 복무하지 않았더라면 직급이 낮거나 나이가 어린 사람을 대하는 나의 사고방식과 행동은 지금과 많이 달랐을 것 같다. 아랫사람에게 대접 받고, 마음대로 부려먹는 것을 마치 성공한 직장 상사나 상급자로서 당연히 누려야 하는 특권이나 권리처럼 여겼을지도 모르겠다. 아랫사람을 마음껏 부리면서도 책임지지 않는 갑질, 적어도 미군 부대에서 이러한 갑질은 보편적인 것이 아니었다. 계급이나 직급, 나이로 상대방을 강요하며 자신을 따르도록 하는 리더십을 별로 경험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책임을 충분히 다함으로써 리더십은 발휘된다. 모범을 보이고 열심히 먼저 하면 다른 사람은 자연스럽게 그 사람을 따라 간다.

11. 내가 이등병이었을 때 나를 격려했던 미군 병장과 하사의 진심어린 말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영어를 잘 하지 못해서 벙어리처럼 지냈고, 체력 또한 좋지 않아 아침 훈련 때마다 사실상 낙오자 대열에서 뛰었던 내 옆에서 끝까지 함께 뛰면서 그들은 나를 결코 버리지 않았다. 그들은 언제나 내 역할을 존중해주었으며 내가 성장할때까지 묵묵히 기다려주었다. 그들은 내가 “최고의 카투사가 될 것이다”고 말하며 내게 용기를 주었고, 나는 정말 악착같이 하루 하루를 열심히 보냈다. 그리고 내가 상병이 되자마자 나는 미군 두 명을 인솔하는 팀리더가 되었다. (당시 우리 부대에서 카투사는 병장이 되어야 팀리더가 되었다.) 내게 용기를 주었던 미군들처럼 나도 내 팀에 속한 하급자들에게 모범이 되고자 정말 열심히 노력했다. 마지막 휴가를 떠나는 전날까지도 게으름 피우지 않고 열심히 근무했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아주 어버버하던 시절, 내게 진심어린 말로 격려해주었던 미군들의 말이 정말 고맙다. 많이 실수하고 당장의 결과가 좋지 않았지만 그들은 내게 희망을 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내가 더 잘할수 있을때까지 기다려주었다.

12. 솔선수범과 책임감에 기반한 리더십, 그리고 그것을 따라가는 사람들 사이에는 강한 연대감이 형성되며 건강한 시너지가 발생한다. 나에게 용기를 주었던 미군 상관들은 내가 징병제로 군에 왔고, 나를 마음껏 부려 먹어도 내가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나의 존재와 역할을 존중해 주었다. 우리 군에도, 그리고 우리 사회에도 내가 경험했던 덕목을 갖춘 리더들이 더 많아지길 기대한다. 묵묵하게 최선을 다하는 리더들이 지금보다 더 주목 받았으면 좋겠다. 더 많은 권한을 가진 최상위 상급자들이 자신이 누려왔던 당연한 '갑질', '특혜'를 먼저 내려 놓고, 당연히 그래야 하는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부터 시작했으면 좋겠다.

Posted by Jason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