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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투사 이야기

(카투사 헌병/MP 이야기) 4. 헌병 특기병 교육

내가 속한 헌병 중대 중에서 용산에는 두 개의 소대 밖에 없었다. 즉, 용산으로 파견된 소대인 것인다. 그리고 그 중 카투사는 총 스무 명 남짓. 각 소대 당 10명 꼴이다. 헌병은 자대 배치를 받으면 총 3주간의 OJT(On the Job Training)을 한다. 즉 육군에서 말하는 후반기 교육(특기병 교육)을 말한다. 헌병 근무를 위해 알아야 할 기본적인 지식을 습득하는 교육이다. 헌병 생활에서 쓰이는 기본 용어, 무전기 사용 용어, 군사 지식 등 3주 동안에 여러 가지를 배운다. 물론 실무를 접하기 전까지는 무슨 내용이었는지조차 기억하기 힘들지만.

그저 매일 백과사전 같은 두꺼운 책을 보면서 그냥 읽기만 했다. 그리고 그게 끝나면 하루 종일 군화만 닦고 군복만 다렸다. 그게 하루의 생활이었다. 그리고 이곳 저곳 다니면서 ‘In processing’ 이라는 것을 했다. 미군부대에서 생활하기 위해 하는 일종의 등록 절차이다. 예를 들어 도서관에서 책을 볼 수 있도록 도서관 카드를 만들고, 실내 체육관에 신규 회원(?)등록을 하고 건강 기록을 만들고 하는 등 군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업무이다. 그리고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총을 등록하는 절차도 포함된다.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총에 대해 각각 한 장씩 Weapon Card 라는 것이 발급되며 이 카드를 제시하면 내가 등록한 총을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다.

춘천으로

내가 속해 있는 중대 본부는 춘천 Camp Page에 있기 때문에 그곳에 가서 나를 관리하고 있는 한국군 장교인 지원대장에게 인사를 하고 여러 가지 필요한 것을 보급 받았다. 화생방 장비(NBC Gear라고 한다. 방독면-Gas Mask, Training Mopp suit, Live or Real Mopp suit 등)와 헌병의 경우 피스톨 벨트(권총을 피스톨이라고 부른다. 각종 장비를 달 수 있는 굵직한 검정 벨트), 권총 케이스, 수갑 및 수갑 케이스, 수갑 키, 후레쉬 라이트, 곤봉, 무전기 케이스, 비닐 장갑(사건 현장에서 사용하는 장갑), M9 Ammo Pouch 등을 받는다. 이것들은 잃어버릴 경우 직접 돈으로 물어 내야하기 때문에 주위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폭설이 내리던 어느날 춘천 Camp Page에서>

TA-50

그리고 용산에 다시 와서 TA-50 라는 것을 보급받았다. 더플백(군용 대형 가방), Bear Suit (곰돌이 옷인데 따뜻하긴 하나 좀 불편함), Cold weather boots (겨울용 부츠), Coretex (고어텍스), Ruck Sack (군용 배낭) 등 여러 가지 장비와 물품을 보급 받았다. 이것들은 실제 군생활에서 자주 쓰는 것들이고 훈련 갈 때 꼭 필요한 군용품들이다. 너무 많아서 일일이 나열하기는 힘들다. 보급 후 리스트가 나오는데 가끔 이 물건들이 잘 관리되고 있는지 불시에 소대별로 점검을 하는 경우가 있다. 하나라도 없으면 새로 사야 하고 장비가 지저분하다거나 불량일 경우 ‘시정’해야 한다. 대부분 훈련을 앞두거나 훈련 직후 이런 점검이 이루어지는데 평소에 잘 관리해 두는 것이 상책이다. 

이렇게 모든 장비를 받고 나니 더더욱 정신이 없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허리조차 펴지 못하고 주눅들어 있을 내 육군훈련소 한국군 동기들을 생각하면 오히려 미안한 생각이 들 뿐이다. 똑같이 비지땀 흘리며 훈련 받았지만 서로 다른 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모습이 때론 부끄럽기까지 하다.

첫 패스 (휴가)

집에 간다는 것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용산역에서 TMO를 타고 고향으로 향했다. 한국군도 아니고 일본군도 아니고 이상한 군복을 입고 이상한 모자를 쓰고 다니는 내 모습은 어딜 가나 관심의 대상이었다. 하긴 나도 이런 이상한 미군복을 처음 입어보는 것이어서 왠지 쑥쓰럽기도 했다.

'뭐야! 저 쉨끼.. 혹시 특공대 아녀? '

같이 있던 한국군 중. 이렇게 나를 바라보는 친구들도 있었다.

달콤한 휴가를 마치고 부대에서 입을 사복과 간단한 물건들을 챙겨서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미군 부대에서는 근무 시간 이외에는 사복을 입는다. 외출이나 외박을 하게 되는 경우에도 사복을 입는다. 그래서 첫 휴가 때 사복을 챙겨오는 게 관례인데 우리 같은 경우 신병은 짬이 없기 때문에 호출기를 사용한다. 혹시 외출 나갔을 경우 비상이 걸리면 연락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짬이 있는 고참은 물론 무선 전화기(?)를 사용한다는 전설이 있다. 한때 그랬다는 정도일뿐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니까. 물론 무선 전화기 사용은 육군에서 허가하지 않는다. 호출기에 대해 말하자면, 실제로 새벽 3~4시에 비상이 걸리는 경우가 많고 모든 게 불규칙한 헌병 생활에서 호출기는 필수일 수 밖에 없다. 아침까지만 해도 오늘이 쉬는 날인데 점심 먹고 오니 저녁 근무로 바뀌는 상황이 부지기수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고참들은 뭘 하는 걸까?

내가 신병 때 고참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다. 왜냐고? 고참을 거의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우리 소대는 밤근무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아침에 눈을 떴을 때는 아무도 없었고, 오전에 내가 교육을 받을 즈음 고참들은 근무를 마치고 들어와서 말없이 모두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OJT 교육을 마치고 저녁이 될 때쯤이면 그들은 밤근무를 나가기 때문에 얼굴조차 볼 수 없다. 어떤 때는 새벽부터 우르르 몰려나가고는 훈련이라면서 몇일 동안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남은 사람이라곤 나를 교육시키는 선임병장과 나 단 둘 뿐. 난 그 때 내 고참들이 뭘 하는지 몰랐다. 왜 그렇게 바쁘게 움직이고 어딜 가는지... 왜 낮에만 잠을 자는지. 도무지 몰랐다.

11월 말. 첫 후임병을 맞이하다.

마침내 내 쫄(후임병)이 들어왔다. 너무 기뻤다.

'앗싸~~~'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난 그때부터 소대로 투입되어 진짜 헌병으로 살아가기 시작했다. 이제부터는 교육이 아니라 실전이다.

첫 근무

Motor Pool (차량 정비소: 차량을 주차하며 여러 가지 장비를 저장하는 장소이다.)에서 몇 명의 미군들과 간단하게 작업을 했다. 비교적 쉬운 일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여유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