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시작하며

이 글은 지난 2000년부터 2002년까지 저의 카투사 복무 시절을 담은 이야기입니다. 용산 헌병대에서 2년 2개월 동안 ‘순찰 헌병’ 생활을 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제 경험을 함께 나누고자 펜을 잡았습니다. 카투사가 일반 군인보다 더 우수하다거나 일부 한국군보다 더 고생을 한다는 이야기를 하자고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육군이든 카투사든 또는 다른 형태의 근무를 하든지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자신의 군 복무 시절의 추억과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습니다. 이 글을 통해 카투사 헌병(MP)이라는 조금 독특한 경험을 함께 나눔으로써 카투사로 복무했던 분들에게는 ‘추억’을 나누고, 카투사에 대해 오해를 가진 분들에게는 (일부지만) ‘진실’을 알려주고자, 그리고 더 나은 한국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건설적인 생각’을 나누고자 합니다. 이 글에 담긴 내용은 저의 주관적인 경험이며, 모든 카투사에게 해당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카투사, 그리고 호기심

1999년 봄.

나는 그 때 육군에 ‘카투사(KATUSA: Korean Augmentation Troops to United States Army)’라는 제도가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 동안 주위 사람들에게 들어서 대충 외인부대가 있다는 것을 들은 적은 있었지만 그게 정확히 뭔지는 몰랐다. 그저 ‘미군부대에서 생활하는 것’ 정도 밖에는 아는 지식이 없었다. 어릴 때부터 외국인들하고 어울리기 좋아했던 나는 그냥 한 번 해볼까 하는 식으로 카투사에 지원하기로 했다. 당시 나에게 있어서 카투사라는 것은 목표라기보다는 하나의 호기심이었을 뿐이었다.

육군으로 가는 것보다 왠지 멋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있었고, 육군해서 힘들게 군생활 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에 어떻게 하면 카투사가 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우선 토익 성적표를 제출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토익 시험을 접수했고 물론 그 전에는 한 번도 토익을 본 적이 없어서 그냥 한 번 보는 식이었다. 당시 커트라인은 600점.

토익 시험 당일 아침.

“Damn!”

하필 늦잠을 잤다. 그 때 나는 (서울) 아현동에 살고 있었는데 시험장이 젠장 성동구였다. 그리 멀지 않지만 그다지 가까운 거리도 아니었다. 문득 가기 싫은 생각이 들었다. 아마 카투사에 꼭 붙어야 한다는 절박감이 없었기에 이런 귀차니즘이 발동하지 않았나 싶다. 군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기에 그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 시험비를 낸 걸 어떻하나! 그래서 택시를 타고 늦게라도 시험장에 가자는 생각으로 급하게 집을 나섰다.

하늘이 나를 도왔는지 운 좋게 시험 시간에 딱 맞게 도착했다. 택시를 탔는데 정말 다행히도 차가 하나도 막히기 않았길 망정이지… 

나는 이 시험이 그렇게 중요한 시험인지 그 땐 몰랐으니까.... 

그 시험이 내가 본 처음이자 마지막 토익 시험이었다. 그렇게 시험을 치루고 원서를 접수하고 여느 때처럼 학교를 다니며 보냈다.

그러던 11월의 어느 날.

집으로 무슨 성적표처럼 보이는 기분 나쁜 봉투가 날라왔다.

‘성적표?’

내심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그 순간 갑자기 몇 달 전 카투사에 지원했던 기억이 섬광처럼 떠올랐다.

'앗! 그렇지! 벌써 11월이구나..’

그렇다. 그것은 바로 카투사 ‘합격 통지서’였다. 내년(2000년) 8월 25일에 입대하라는 것.

솔직히 별 느낌은 없었다. 토익도 겨우 봤고 카투사도 그냥 지원했으니 합격한들 무슨 특별한 느낌이 있었겠나? 그냥 머 내년에 군대 가는구나.. 이런 생각 밖에.. 카투사의 개념조차 없었던 그 시절.

그렇게 카투사가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운이 억세게 좋았던 것이다.

그리고 2000년 8월 25일. 입대일은 어김없이 나를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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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취임 100일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수 많은 네티즌들이 '고마워요 문재인' 을 검색하면서 네이버 실시간 검색 1위에도 올랐다. '고마워요 문재인' 검색 이벤트에 문재인 대통령은 트위트에 직접 동영상을 올려 화답했다.

(다시 한번) 고마워요 문재인

여러분 고맙습니다. 

#고마워요_문재인 취임 100일 최고의 선물입니다. 제가 더 고맙습니다. 지난 100일 국민여러분 덕분으로 잘 올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시간들도 국민여러분과 함께 가겠습니다. #국민여러분_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Posted by Jason7

(미국 / 동부) 워싱턴 D.C. 내셔널 몰(National Mall) #4

미국에서의 사실상 마지막 일정으로 다시 내셔널 몰을 찾았다. 박물관 두 곳을 구경하고, 오후에는 세계적인 전략 싱크탱크에서 열리는 공개 세미나에 참석할 예정이다. 일단 항공 우주 박물관부터 가볼까?


Smithsonian National Air and Space Museum

이곳은 '천조국' 미국의 위엄을 유감없이 경험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박물관이다. 이런 엄청난 곳이 무료라는 것 또한 미국의 위엄이 아닌가 싶다. 교과서, 역사 다큐멘터리에서나 볼 수 있는 엄청난 기술의 집약체들이 한 곳이 모여 있는 실로 대단한 장소다.





오~~~~~~~~~ 





심지어 진짜 달에서 채취해 온 표면의 물질(돌)까지 전시되어 있어서 직접 손으로 만지며 질감을 느낄 수 있다.



이제부터는 항공기 컬렉션인데 진짜 입이 벌어진다. 역쉬 천조국의 위엄!








항공기 콕핏도 들어가서 직접 볼 수 있다. 비행에 꿈이 있는 아이들에겐 정말 꿈과 같은 장소가 될 듯.



영화 <덩케르크>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영국 최고의 레전드 전투기 '스핏파이어'도 온전히 전시되어 있다.





무인정찰기까지 있다~~ 오~~~~ ㅎㅎ 작아보이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크다.



심지어 항공모함의 내부 모습까지 그대로 재현한 곳도 있다. 비행기 격납고인듯 싶다. 미국 정말 대단하다. 항공모함의 내부라니!!! 역시 천조국의 위엄.


<파노라마 - 클릭>











이것 역시 NASA에서 삥뜯어온 것 같은데 ... 아폴로!!!





우주인들이 직접 입었던 우주복과 탐사 장비들도 그대로 전시되어 있다.





대륙간탄도미사일도 전시되어 있는데 크기가 정말 어마어마 함.







미국 역사 박물관으로 가는 길에 ... 날이 좋아서, 참 좋아서 잠시 동영상을 찍었다.



Smithsonian National Museum of American History

이제부터는 미국 역사 박물관이다. 미국 전체 역사에 대한 내용이 전시되어 있는 것은 아니고, 일부 컬렉션만 있다.





미국의 국기인 '성조기'를 추상화한 작품이다.



미국의 국기와 국가에 대한 전시도 열리고 있었다.



박물관을 나와 백악관 주변을 걸으면서 사진을 몇 장 찍었다.



Center for Strategic & International Studies

이곳은 전 세계에서 가장 권위있고 전문적인 싱크탱크로 내가 참석한 날은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에 대한 공개 세미나가 열렸다. 관련된 책을 쓴 저자와 이 연구소의 연구진과 좌담 형식의 발표가 흥미로웠고, 이후 청중의 질문공세와 발표자의 답변도 즐거웠다.








이것으로 한 달 간의 미국 자료조사 모든 일정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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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기념사도 명문이었지만, 오늘 광복절 경축식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애국지사인 오희옥 할머니가 무반주로 부른 애국가였다. 오희옥 할머니는 광복군 소속으로 문화활동을 했고 광복을 맞이할때까지 항일운동을 했던 인물이다. 놀라운 점은 우리가 지금 부르는 안익태 판의 애국가 선율이 아니라,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 곡조에 맞추어 부른 애국가라는 점. 일제 강점기 시절 독립운동가들이 주로 부르던 애국가는 오늘 오희옥 할머니가 부른 '올드 랭 사인' 판이라고 한다.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광복절 경축식 맨 앞줄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이용수 할머니와 군함도 강제징용 피해자인 이인우, 최장섭 할아버지의 자리가 마련되었다. 대통령이 아니라, 애국지사들이 행사의 주인공이 된 경축식, 그리고 이런 세심한 기획. 잔잔한 울림이 있는 경축식이다.


<경축식 전체 영상>

https://youtu.be/CTcNJ5lhLII

Posted by Jason7

(미국 / 동부) 워싱턴 D.C. 내셔널 몰(National Mall) #3


대학원 선배를 만났다. 선배는 현재 미국에 방문 연구원으로 1년 동안 체류하고 있는데, 다행히 시간이 나서 함께 점심 식사를 했다. 메뉴는 정식 한식! 거의 한 달만에 먹는 한식이다. 한인 마트 내 식사 코너에서 먹었는데 가격도, 맛도 무난 이상으로 괜찮았다. 선배님 고맙습니다!!! ㅎㅎ




국회의사당 (United States Capitol)


미국 드라마 '지정 생존자(Designated Survivor)' 1편을 보면 의사당 건물이 테러로 무너지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건물이 이곳이다.





가까이 가서 보면 더 웅장한 의사당 건물!








<파노라마샷 - 클릭>


의사당 내부로 들어가보자~ 따로 예약을 하지 않아도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다.














의회 도서관의 내부 모습인데, 웅장하고도 우아하다!







의사당 투어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기 전에 간단히 맥주 한 잔 하려고 걸어가던 중 괜찮은 펍을 하나 발견했다. 야외 테라스가 있는 펍이라 딱 좋다!







저녁 6시 밖에 안되었는데도 사람들로 북적인다. 개인적으로 야외 테라스 자리가 참 좋다. 도심 속의 여유랄까? 자유함을 만끽할 수 있는 분위기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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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자료 조사 (2017.7.04~08.03) - 워싱턴 D.C. 중심가 투어


링컨 메모리얼까지 둘러보고 도심을 구경하기 위해 듀퐁 서클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걸어가다보니 미국 국무부 건물이 먼저 보였다. 워싱턴 D.C.에는 대통령이 있는 백악관을 비롯하여 국무부, 재무부, 국방부 등 여러 부처가 모여 있다. 국무부(Department of State)는 한국의 외교부랑 비슷한 역할을 하는 부서로 1789년에 창설되었다. 생각보다 역사가 꽤 있는 부처다. 힐러리 클린턴이 국무장관을 역임했었다. 국무장관의 영어 명칭은 Secretary of State 인데, 미국은 minister (장관) 라는 표현 대신 secretary 라는 말을 쓰는데 왜 그러는지 궁금하다. 혹시 아시는 분?








George Washington University

이제는 George Washington 대학교가 위치한 지역에 도착했다. 보통 GW 라고 부르는 이 대학 캠퍼스의 특징은 일반적인 대학 캠퍼스처럼 독립된, 구분된 캠퍼스가 있는 것이 아니라, 도심 곳곳에 캠퍼스 건물들이 흩어져 있다. 그래서 대학인지 모르고 가면 그냥 다운타운에 있는 건물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쉽다.





















The World Bank Group


그 유명한 월드뱅크. 이름과 다르게 은행은 아니고 주로 개도국 발전을 위해서 빈곤 퇴치 노력을 하는 국제기구이다. 국제학, 정치외교학을 전공하는 많은 이들이 가고 싶어하는 꿈의 직장이기도 하다.



 IMF (International Monetary Fund)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국제통화기금도 바로 근처에 있다. 








IMF를 창설했을때부터 사용했던 돌의 일부를 새 건물 지을때마다 옮겨와 건물에 끼워넣고 있다. 그 만큼 역사를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아닐까 싶은데, 이건 좀 멋있다. 하지만 니들이 해 온 일들은 전혀 멋지지 않다.
















숙소로 돌아가기 전,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추천 받은 페루 식당에 갔다. 메뉴는 하나다. 오직 숯불 훈제 닭고기 요리! 크기만 다를뿐 오직 하나의 메뉴로 승부하는 이곳. 은근히 맛나다. 적당한 간에 담백한 닭고기 요리가 가격 대비 훌륭한 편이다. 그리고 남미에서 아주 유명한 현지 코카콜라인 '잉카콜라'도 맛볼 수 있다. 잉카콜라는 노란색 콜라로 제법 괜찮다.




Posted by Jason7

미국 자료 조사 (2017.7.04~08.03) - 워싱턴 D.C. 내셔널 몰(National Mall) #2


워싱턴 기념탑에서 링컨 메모리얼로 가는 길목에 처음으로 마주하는 곳은 World War 2 Memorial 이다.


World War 2 Memorial


둥근 광장처럼 생긴 공간에 세계제2차대전에 참전한 미국 주(state)의 이름들이 하나 하나씩 적혀 있다. 사람들은 자기 고향 주의 이름 앞에서 사진을 찍곤 하는데, 나는 캘리포니아주가 눈에 들어 왔다. ㅎㅎ 강렬한 햇살, 그리고 비치가 인상적인 캘리포니아!







뙤약볕이 내리쬐는 여름, 발목까지만 담가둬 온 몸이 시원해지는 분수가 있어서 좋다. 나도 두 발을 담궜다. 정말 시원하다. 이 느낌.














자유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희생이 따른다는 점.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산책로가 정말 평화롭고 아늑하다. 곳곳에서는 조깅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가족들과 함께 소풍으로 가기에 참 좋은 이 곳.



한국전쟁 참전 기념 공원 (Korean War Veterans Memorial)


링컨 기념관으로 가는 길에 왼편으로 슬쩍 들어가면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 용사들을 기리는 기념 공원이 있다. <한국전 참전 용사 기념비> 바닥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아로새겨져 있다.

"Our nation [USA] honors her sons and daughters who answered the call to defend a country they never knew and a people they never met."

(Korean War Veterans Memorial, Washington D.C.)

1950년. 이름도 모르는 나라,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을 지키라는 명령에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은 수 많은 미군 병사들. 전사자 5만명, 실종자는 10만명이 넘는다. 그들이 그 자리를 지켰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다. 한국인으로서 이곳을 방문하면 기분이 참 묘하다. 잠시 머물다 가려고 했지만, 10여 분이 넘도록 그 자리를 지켰다. 










다른 외국인들에게는 그저 여러 기념공원 중 하나겠지만, 한국인에게는 아주 특별한 곳이다.



한국 전쟁 당시 작전중인 미군의 모습을 실물 크기 비슷하게 재현하였다. 





바닥엔 한국전쟁에 참여한 국가들의 이름도 새겨져 있다.



<파노라마샷 - 클릭>






호수에 비친 워싱턴 기념탑의 모습이 참 아름답다. 황금색처럼 빛나고 있어서 더욱 아름다웠던 그 날.








내셔널 몰은 정말 아름답고 평온하고 안락한 곳, 다음에도 D.C.를 방문한다면 그땐 꼭 돋자리를 가져가서 소풍을 즐길고 싶을 정도다.

Posted by Jason7

<미군부대에서 카투사로 복무하면서 경험한 리더십>

1. 4성 장군 박찬주 대장 부부의 갑질로 한국군 리더십에 대한 불신이 크다. 아직 청산되지 못한 왜곡된 위계질서가 드러난 사례가 아닐까 생각한다. 여전히 남성 지배적인 한국 사회에서 군생활의 경험은 사회에도 미치는 영향이 크다. 이 글은 주관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했으며 미군이 한국군보다 모든 점에서 뛰어나다는 논리가 아니다. 징병제인 한국과 모병제인 미국을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미군에서 리더들이 하급자인 사병을 어떻게 대하는지 한 번 생각해봤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글을 올린다. 여전히 우리 군에도 훌륭한 리더들이 많다. 그들의 노력으로 여기까지 왔고 앞으로 더 나은 군으로 변모할 것을 믿는다. 박 대장 사건으로 국가를 위해 동료와 부대원들을 위해 성실하게 복무하며 땀흘리는 훌륭한 군인들의 노력이 주목받지 못하는 것이 정말 안타깝다. 숨은 일꾼들을 조명하는 기사도 많아졌으면 좋겠다.

2. 미군부대에서 근무하면서 가장 충격 받았던 것은 계급이 올라갈수록 일을 더 열심히 그리고 오래 한다는 것이다. 한국군에서는 (사병의 경우) 진급할수록 일을 적게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을 더 많이 한다고 내게 주어지는 인센티브가 없으니까. 하지만 미군 부대에서는 얘기가 다르다. 마지막까지 남아서 모든 일을 마무리하는 사람은 이등병이 아니라 가장 계급이 높은 사람이다. 그들은 계급이 낮을수록 비교적 단순한 일만 시키고 하급자들을 퇴근시킨 후 나머지 일을 상급자들이 처리한다. 계급이 높으면 더 많은 보수를 받으니까 하급자보다 더 잘해야 하고 더 많이 일을 해야 한다는 인식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듯 하다.

3. 훈련을 나가거나 근무 중일 때 식사 시간이 되면, 가장 계급이 낮은 사람부터 식사를 하도록 하고, 계급이 높은 사람은 맨 마지막에 식사를 하거나 시간이 부족하면 끼니를 거르기도 한다. 그런 경우가 잦았다. 내 경우, 순찰을 하다가 같이 일하는 미군 파트너의 계급이 낮으면 먼저 식사하도록 하고 시간이 부족하여 내가 식사를 못한 경우도 있다. 계급이 낮은 사람을 먼저 챙기는 문화, 군대에서 그게 가능하다는 것이 놀라웠다. 일부 한국군 부대에서 사병들을 위해 도서관을 만드는 시도는 매우 긍정적이라고 본다. 자신이 존중받는다고 느끼면, 무슨 일이든 더 열정적으로 하게 된다.

4. 미군은 사소하던 크던 자신이 무언가를 책임지고 있다는 것을 매우 자랑스러워한다. 이러한 인식은 전문성(professionalism)에 기반하는 것으로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프로답게 수행하는 것을 최고의 덕목으로 꼽는다. 따라서 어떤 작전을 수행하거나 주어진 업무를 수행하는데 있어서 외부인이나 타 부대에서 온 사람이 “여기 책임자가 누구입니까?” 라고 물었을 때 “제가 책임자입니다.”라고 매우 자랑스럽게 얘기를 하며 책임자가 당당하게 등장한다. 최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일부 우리 군(사회)의 모습과는 사뭇 차이가 있다.

5. 그들은 "책임진다는 것"의 의미를 우리와 조금 다르게 받아들이는 듯 하다. 한국에서는 어떤 일에 책임을 진다는 것은 그것이 잘못되었을 때를 생각하여 최대한 회피해야할 것으로 보지만, 미군에서는 자신이 어떤 일이나 임무에 대해 책임짐으로써 프로 정신을 인정받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적어도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일, 또는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대해 누구보다 프로 의식과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며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을 아주 기꺼이 받아들인다. 상급자의 명령에 따르는 것은 군에서의 위계적 명령이기도 하지만, 상급자가 보여주는 전문성에 대한 존중이기도 하다. 자신보다 능력 면에서, 책임성에서 뛰어난 상급자에 대한 존중이 위계질서를 구성하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6. 미군에서는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부대원 전체가 달리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때 가장 선두에 서는 사람은 이등병이 아니라 부대장과 원사(하사관)다. 나이 50이 이미 훌쩍 넘은 그들이 가장 선두에서 큰 목소리로 군가를 선창하고 최선을 다해 뛴다. 땀이 비오듯 쏟아지는데도 낙오하지 않고 끝까지 완주하는 모습, 정말 감동적인 장면이다. 리더란 그런 것이다. 이런 비교를 하는 것이 너무 비참하지만, 그래도 상상을 해보자. 한국군 장군들 중에서, 계급이 높은 하사관들 중에서 그렇게 선두에서 달리며 목청 높여 군가를 부를 수 있는 군인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7. 계급이 높거나 권한이 있다고 그것을 개인적 이익을 위해 남용하는 일은 미군에서 별로 없었던 기억이 난다. 공적 권한을 사적 영역으로 확대했을때 그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 누군가 그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번은 내가 미군 사병에게 이렇게 물어본 적이 있다. 한국군에서는 하사관이나 장교가 이사할때 사병들을 부려먹는 일이 빈번하다. "만약 당신의 상관이 그런 일을 시킨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물어봤다. 그 친구의 대답은 "Fxxx you"라고 말한다였다. 한국군의 고위직 예를 들어 장군들은 사병인 운전병을 밤 늦은 시간이던 주말이던 아주 열심히 부려먹었다. 이번에 문제가 된 갑질 논란처럼. 피치 못할 공무를 위해 운전병이 그들과 함께할 일이 있을수 있지만, 모든 일이 공무는 아니었을 것이다. 어느 대위는 자신의 대학원 과제를 카투사에게 시키기도 했다. 물론 모든 한국군 상급자가 그러진 않았겠지만 대체로 공과 사가 잘 구분되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사병은 구조적인 약자인데, 일부 하사관이나 장교는 그 점을 잘 악용하였다.

8. 메인 게이트에서 근무중일때 특별한 경험을 했다. 주한미군의 총책임자인 리언 라포트 연합사령관(4성장군)은 자신의 관용차로 BMW 7시리즈를 사용하고 있었다. 주말이었다. 낡은 국산차인 대우 에스페로 한 대가 유유히 다가오더니 내 앞에서 멈췄다. 그리고 한 노인이 내게 신분증을 건넸는데 ..... 그는 바로 라포트 4성장군이었다! 주한미군 끝판왕 미군 4성장군이라니!!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평소처럼 운전병 불러서 관용차를 타고 오면 신분증 확인도 하지 않고 무사통과에 편하게 갈 수 있었던 그가 손수 운전하며 신분증 확인을 받는 불편함을 감수한 것이다. 그것도 군인 서열로 대한민국 No.1인 4성장군이 .. 미군 장군들은 업무 시간 이후에 자신의 차를 타고 다니는 것을 종종 목격하였다. 하지만 한국군 장군이 자신이 직접 운전을 하면서 신분증을 내미는 경우는 단 차례도 목격하지 못했다. 그들은 그래야 할 필요성을 전혀 못느꼈을 것이다.

9. 한 번은 용산 부대 내에서 고위직 장군의 이취임식이 열렸다. 헌병으로서 나는 그 날 이취임식에 참석하는 한국군, 미군 장군들과 내외빈 손님을 안내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3성 장군 이상만 차를 타고 행사장으로 입장할 수 있고, 그 이하 계급은 걸어서 들여 보내라는 헌병 대장의 지시가 있어서 그렇게 안내를 하고 있었다. 미군은 단 한 명도 대놓고 불만을 표시하지 않았는데, 한국군 원스타 차량이 내 앞에 멈춰서더니, 장군은 없고 그 부인이 내게 통과시켜달라고 요구하는 일이 있었다. 원칙대로 얘기하며 그럴 수 없다고 말하자, 그 부인은 내가 카투사인 것을 알아차리더니 내 이름을 적어서 한국군 부대에 말하겠다고 나를 협박했다. 나는 쫄지 않고 그러시라고 당당하게 얘기했다. 그렇게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한국군에서 나를 징계하려 해도, 나는 원칙을 지켰기 때문에 적어도 미군 측에서는 그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것이라는 강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갑질이 원칙을 이길수는 없다.

10. 카투사로 복무하지 않았더라면 직급이 낮거나 나이가 어린 사람을 대하는 나의 사고방식과 행동은 지금과 많이 달랐을 것 같다. 아랫사람에게 대접 받고, 마음대로 부려먹는 것을 마치 성공한 직장 상사나 상급자로서 당연히 누려야 하는 특권이나 권리처럼 여겼을지도 모르겠다. 아랫사람을 마음껏 부리면서도 책임지지 않는 갑질, 적어도 미군 부대에서 이러한 갑질은 보편적인 것이 아니었다. 계급이나 직급, 나이로 상대방을 강요하며 자신을 따르도록 하는 리더십을 별로 경험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책임을 충분히 다함으로써 리더십은 발휘된다. 모범을 보이고 열심히 먼저 하면 다른 사람은 자연스럽게 그 사람을 따라 간다.

11. 내가 이등병이었을 때 나를 격려했던 미군 병장과 하사의 진심어린 말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영어를 잘 하지 못해서 벙어리처럼 지냈고, 체력 또한 좋지 않아 아침 훈련 때마다 사실상 낙오자 대열에서 뛰었던 내 옆에서 끝까지 함께 뛰면서 그들은 나를 결코 버리지 않았다. 그들은 언제나 내 역할을 존중해주었으며 내가 성장할때까지 묵묵히 기다려주었다. 그들은 내가 “최고의 카투사가 될 것이다”고 말하며 내게 용기를 주었고, 나는 정말 악착같이 하루 하루를 열심히 보냈다. 그리고 내가 상병이 되자마자 나는 미군 두 명을 인솔하는 팀리더가 되었다. (당시 우리 부대에서 카투사는 병장이 되어야 팀리더가 되었다.) 내게 용기를 주었던 미군들처럼 나도 내 팀에 속한 하급자들에게 모범이 되고자 정말 열심히 노력했다. 마지막 휴가를 떠나는 전날까지도 게으름 피우지 않고 열심히 근무했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아주 어버버하던 시절, 내게 진심어린 말로 격려해주었던 미군들의 말이 정말 고맙다. 많이 실수하고 당장의 결과가 좋지 않았지만 그들은 내게 희망을 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내가 더 잘할수 있을때까지 기다려주었다.

12. 솔선수범과 책임감에 기반한 리더십, 그리고 그것을 따라가는 사람들 사이에는 강한 연대감이 형성되며 건강한 시너지가 발생한다. 나에게 용기를 주었던 미군 상관들은 내가 징병제로 군에 왔고, 나를 마음껏 부려 먹어도 내가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나의 존재와 역할을 존중해 주었다. 우리 군에도, 그리고 우리 사회에도 내가 경험했던 덕목을 갖춘 리더들이 더 많아지길 기대한다. 묵묵하게 최선을 다하는 리더들이 지금보다 더 주목 받았으면 좋겠다. 더 많은 권한을 가진 최상위 상급자들이 자신이 누려왔던 당연한 '갑질', '특혜'를 먼저 내려 놓고, 당연히 그래야 하는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부터 시작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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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Jason7

미국 자료 조사 (2017.7.04~08.03) - 워싱턴 D.C. 내셔널 몰(National Mall) #1


내셔널 몰(National Mall)은 쇼핑몰이 아니다. 처음엔 쇼핑몰인줄 알았는데... ^^;; 워싱턴 D.C.에 위치한 공원으로 백악관을 포함하여 링컨 메모리얼(Lincoln Memorial), 국회의사당(United States Capitol), 워싱턴 기념탑(Washington Monument), 스미소니언 박물관 등을 포함한 어마어마하게 광활한 지역을 일컫는 표현이다. 정말 넓고 넓고 넓은 지역이다. 미국의 위엄이 드러나는 장소랄까, 정말 말끔하게 잘 정돈되어 있어서 한 번 더 놀라는 곳.


백악관 (The White House)


워싱턴 D.C.에 왔으니 일단 백악관(The White House)부터 봐야겠다. 현재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서 집무를 보는 공간이다. 한국에서 대통령이 머무는 청와대는 격리된 공간에 있어서 왕래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백악관은 지도로 확인하더라도 접근하기 쉬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또한 바로 근처에 재무부, 국무부, 국방부가 있어서 긴급한 일이 터지만 대통령이 바로 장관들을 백악관으로 호출하기 좋다. 어마어마하게 큰 공원 한 가운데 백악관이 자리잡고 있다고 보면 이해하기 쉽다.



세계대장(?)인 미국 대통령을 경호하는 일이라 경비가 아주 삼엄하다.





재무부 건물, 백안관 바로 옆에 바~짝 붙어 있다. 왜 재무부가 가장 가깝게 붙어 있는지 잠깐 궁금해지 순간 ㅎㅎ



백악관의 정면은 이렇다. 줌을 당겨서 이 정도로 나온 것이지 실제로는 꽤 멀다. 경호상의 이유로 거리를 둔 것이고, 철로 펜스도 쳐 놓았다. 아래 영상을 보면 더 현장을 이해하기 쉽다.




워싱턴 기념탑 (Washington Monument)




<파노라마 샷은 클릭>







단순하지만, 너무 멋있어서 그냥 보고만 있어도 좋은 워싱턴 기념탑이다. 순광일때 다르고, 역광일때 느낌이 다른 기념탑. 스파이더맨 홈커밍에서도 나온 유명한 명소다. 기념탑으로 걸어갈때 발바닥에서 전해지는 천연잔디의 느낌도 정말 좋다. 공원의 끝판왕이랄까, 정말 멋진 곳.



<파노라마 샷은 클릭>










<파노라마 샷은 클릭>






워싱턴 기념탑(Washington Monument) 가까이 걸어가면서 촬영을 했다. 두근두근두근~~~~ 













다들 이러고 누워서 논다. 나도 따라서~ ㅎㅎ






<파노라마 샷은 클릭>




이젠 링컨 메모리얼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자.

Posted by Jason7

미국 자료 조사 (2017.7.04~08.03) - 워싱턴 D.C. / 엘리콧 시티 (메릴랜드)

텍사스 오스틴에서 세 시간을 날아 워싱턴 레이건 공항에 도착했다. 김포공항이 연상될 정도로 정말 아담한 공항이다. 토요일 오후라 그런지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흥미로운 것은 공항 내 상점에 무인결제기가 은근히 많았다. 음식이든 상품이든 그것을 사고 각자 알아서 바코드를 찍어 신용카드로 결제하는 것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편리한 세상이 되었지만, 이제 계산을 담당했던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편리하면서도 한켠으로는 뭔가 걱정이 되는 ~



Lyft를 타고 숙소로 가는 길에 국방부(Pentagon) 건물이 눈에 들어 왔다. 말로만 들었던 펜타곤이다! 정말 어마어마하게 큰 건물인데, 국방부 건물의 진짜 멋은 하늘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오각형 모습의 거대한 건물을 하늘에서 보면 정말 멋질듯싶다. 다음에 펜타곤을 방문할 기회가 있겠지?



숙소는 알링턴에 위치한 2층집으로 이곳도 에어비앤비로 머문다. 숙박비가 워낙 비씨고, 특히나 워싱턴 D.C.는 물가가 비싸기로 유명하기 때문에 에어비앤비가 아니면 숙박비가 감당이 안된다. ㅠㅠ 아담한 전형적인 미국식 가정집인데, 주인장이 IT 쪽에 워낙 관심이 많아서인지 인터넷이 수퍼스피드급이다! 아주 아주 대만족! 집도 깨끗하고, 걸어서 갈 수 있는 식당들도 있어서 위치가 참 좋다. 지하철역까지도 10분 이내면 걸어서 갈 수 있다.






Ellicott City, Maryland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고자 한인교회를 다시 방문했다. 이번에는 한국에서 알고 지내던 목사님이 계신 곳이라 오스틴에서와 같은 일은 없다. ^^ 그 교회에 다니는 집사님의 차를 얻어타고 70여 킬로미터를 1시간도 못되어 주파하여 메릴랜드 주의 엘리콧 시티에 도착했다. 볼티모어랑은 지근거리에 있다.

한국 OO교회에서 청년부 목사와 청년으로 만나 뜨거운 추억을 쌓아갔던 우리가, 5년이란 시간이 흐른 후 지구 반대편에서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서울로 대학을 온 후, 나는 20대엔 청년부 모임에 거의 참석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사회적으로 떠들썩한 사건이 있긴 했지만) 개인적으로 그 교회에서의 청년부 활동은 내가 다시 교회 공동체의 소중함을 깨닫는 중요한 계기이자, 순간 순간이 값진 추억들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엔 조 목사님이 있었다. 2-3년 밖에 되지 않았던 그때의 짧은 만남이 아직까지 내게 깊은 울림으로 남아 있는 것은 그런 이유다.

지금 내가 머무는 워싱턴 DC 숙소에서 목사님이 사역하는 교회까지 거리는 70여 킬로미터. 애초에 거리가 중요하지 않았다. 여기까지 왔는데 택시를 타고서라도 만나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이었다. 참 감사하게도 워싱턴 DC 근처에 사는 집사님께서 나를 픽업하여 교회까지 함께 이동했고, 저녁 식사와 후식을 먹은 후 목사님은 나를 제 자리로 고스란히 옮겨다(?) 주셨다. 오랜만이었지만 마치 지난 주에 보고 일주일만에 다시 만난 것처럼 전혀 낯설지 않았던 7시간의 만남. 돌아온 탕자에게 성대한 잔치를 베풀듯 진심으로 환대해주셔서 참 고맙다. 그것도 이 널디 넓은 미국 땅에서. 예배 후 함께 나누었던 밥 한 끼가 유난히 더 따뜻하고 맛있었던 날이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만날 것을 믿는다. 그곳이 어디든, 언젠가 다시.

목사님 차를 타고 엘리콧 시티 다운타운(?)으로 갔다. 마치 유럽의 옛 도시처럼 아기자기한 건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커피가 맛있었던 이 곳.



엘리콧 시티에서의 짧은 반나절이 저물어간다. 이제 돌아가자 D.C.로~

Posted by Jason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