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속한 헌병 중대 중에서 용산에는 두 개의 소대 밖에 없었다. 즉, 용산으로 파견된 소대인 것인다. 그리고 그 중 카투사는 총 스무 명 남짓. 각 소대 당 10명 꼴이다. 헌병은 자대 배치를 받으면 총 3주간의 OJT(On the Job Training)을 한다. 즉 육군에서 말하는 후반기 교육(특기병 교육)을 말한다. 헌병 근무를 위해 알아야 할 기본적인 지식을 습득하는 교육이다. 헌병 생활에서 쓰이는 기본 용어, 무전기 사용 용어, 군사 지식 등 3주 동안에 여러 가지를 배운다. 물론 실무를 접하기 전까지는 무슨 내용이었는지조차 기억하기 힘들지만.

그저 매일 백과사전 같은 두꺼운 책을 보면서 그냥 읽기만 했다. 그리고 그게 끝나면 하루 종일 군화만 닦고 군복만 다렸다. 그게 하루의 생활이었다. 그리고 이곳 저곳 다니면서 ‘In processing’ 이라는 것을 했다. 미군부대에서 생활하기 위해 하는 일종의 등록 절차이다. 예를 들어 도서관에서 책을 볼 수 있도록 도서관 카드를 만들고, 실내 체육관에 신규 회원(?)등록을 하고 건강 기록을 만들고 하는 등 군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업무이다. 그리고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총을 등록하는 절차도 포함된다.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총에 대해 각각 한 장씩 Weapon Card 라는 것이 발급되며 이 카드를 제시하면 내가 등록한 총을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다.

춘천으로

내가 속해 있는 중대 본부는 춘천 Camp Page에 있기 때문에 그곳에 가서 나를 관리하고 있는 한국군 장교인 지원대장에게 인사를 하고 여러 가지 필요한 것을 보급 받았다. 화생방 장비(NBC Gear라고 한다. 방독면-Gas Mask, Training Mopp suit, Live or Real Mopp suit 등)와 헌병의 경우 피스톨 벨트(권총을 피스톨이라고 부른다. 각종 장비를 달 수 있는 굵직한 검정 벨트), 권총 케이스, 수갑 및 수갑 케이스, 수갑 키, 후레쉬 라이트, 곤봉, 무전기 케이스, 비닐 장갑(사건 현장에서 사용하는 장갑), M9 Ammo Pouch 등을 받는다. 이것들은 잃어버릴 경우 직접 돈으로 물어 내야하기 때문에 주위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폭설이 내리던 어느날 춘천 Camp Page에서>

TA-50

그리고 용산에 다시 와서 TA-50 라는 것을 보급받았다. 더플백(군용 대형 가방), Bear Suit (곰돌이 옷인데 따뜻하긴 하나 좀 불편함), Cold weather boots (겨울용 부츠), Coretex (고어텍스), Ruck Sack (군용 배낭) 등 여러 가지 장비와 물품을 보급 받았다. 이것들은 실제 군생활에서 자주 쓰는 것들이고 훈련 갈 때 꼭 필요한 군용품들이다. 너무 많아서 일일이 나열하기는 힘들다. 보급 후 리스트가 나오는데 가끔 이 물건들이 잘 관리되고 있는지 불시에 소대별로 점검을 하는 경우가 있다. 하나라도 없으면 새로 사야 하고 장비가 지저분하다거나 불량일 경우 ‘시정’해야 한다. 대부분 훈련을 앞두거나 훈련 직후 이런 점검이 이루어지는데 평소에 잘 관리해 두는 것이 상책이다. 

이렇게 모든 장비를 받고 나니 더더욱 정신이 없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허리조차 펴지 못하고 주눅들어 있을 내 육군훈련소 한국군 동기들을 생각하면 오히려 미안한 생각이 들 뿐이다. 똑같이 비지땀 흘리며 훈련 받았지만 서로 다른 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모습이 때론 부끄럽기까지 하다.

첫 패스 (휴가)

집에 간다는 것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용산역에서 TMO를 타고 고향으로 향했다. 한국군도 아니고 일본군도 아니고 이상한 군복을 입고 이상한 모자를 쓰고 다니는 내 모습은 어딜 가나 관심의 대상이었다. 하긴 나도 이런 이상한 미군복을 처음 입어보는 것이어서 왠지 쑥쓰럽기도 했다.

'뭐야! 저 쉨끼.. 혹시 특공대 아녀? '

같이 있던 한국군 중. 이렇게 나를 바라보는 친구들도 있었다.

달콤한 휴가를 마치고 부대에서 입을 사복과 간단한 물건들을 챙겨서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미군 부대에서는 근무 시간 이외에는 사복을 입는다. 외출이나 외박을 하게 되는 경우에도 사복을 입는다. 그래서 첫 휴가 때 사복을 챙겨오는 게 관례인데 우리 같은 경우 신병은 짬이 없기 때문에 호출기를 사용한다. 혹시 외출 나갔을 경우 비상이 걸리면 연락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짬이 있는 고참은 물론 무선 전화기(?)를 사용한다는 전설이 있다. 한때 그랬다는 정도일뿐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니까. 물론 무선 전화기 사용은 육군에서 허가하지 않는다. 호출기에 대해 말하자면, 실제로 새벽 3~4시에 비상이 걸리는 경우가 많고 모든 게 불규칙한 헌병 생활에서 호출기는 필수일 수 밖에 없다. 아침까지만 해도 오늘이 쉬는 날인데 점심 먹고 오니 저녁 근무로 바뀌는 상황이 부지기수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고참들은 뭘 하는 걸까?

내가 신병 때 고참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다. 왜냐고? 고참을 거의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우리 소대는 밤근무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아침에 눈을 떴을 때는 아무도 없었고, 오전에 내가 교육을 받을 즈음 고참들은 근무를 마치고 들어와서 말없이 모두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OJT 교육을 마치고 저녁이 될 때쯤이면 그들은 밤근무를 나가기 때문에 얼굴조차 볼 수 없다. 어떤 때는 새벽부터 우르르 몰려나가고는 훈련이라면서 몇일 동안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남은 사람이라곤 나를 교육시키는 선임병장과 나 단 둘 뿐. 난 그 때 내 고참들이 뭘 하는지 몰랐다. 왜 그렇게 바쁘게 움직이고 어딜 가는지... 왜 낮에만 잠을 자는지. 도무지 몰랐다.

11월 말. 첫 후임병을 맞이하다.

마침내 내 쫄(후임병)이 들어왔다. 너무 기뻤다.

'앗싸~~~'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난 그때부터 소대로 투입되어 진짜 헌병으로 살아가기 시작했다. 이제부터는 교육이 아니라 실전이다.

첫 근무

Motor Pool (차량 정비소: 차량을 주차하며 여러 가지 장비를 저장하는 장소이다.)에서 몇 명의 미군들과 간단하게 작업을 했다. 비교적 쉬운 일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여유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Posted by Jason7

2000년 11월 2일.

난 용산으로 자대 배치 받았다.

“MOS (Military Occupational Specialty: 군사주특기) 95B.”

순찰헌병이라는 것. 그 순간 카투사에 헌병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았다. 그리고 ‘95B’라는 주특기가 MP(Military Police)라는 것도. 전체 동기 중에서 용산 헌병으로 가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다. 용산에 배치 받은 내 동기들은 모두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하지만 난 기분이 좀 찝찝했다. 내가 무슨 일을 하러 가는 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저 조금 두려울 뿐이었다. 아무도 헌병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단지 KTA 구석 구석에 헌병에 대한 얘기가 전설로만 남아 있었을 뿐.

용산행 지하철

점심을 먹고 우리는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쪽팔리게 무슨 지하철역? 그렇다, 진짜 쪽팔렸다. 다른 친구들은 버스 타고 군용 트럭타고 가는데 용산으로 가는 우리는 쪽팔리게 두 줄로 쭉 걸어서 지하철역까지 걸어갔다. 지나가는 아줌마, 애들이 다 쳐다본다. 쟤네도 군인이냐고. 그리고 적당히 흩어져 용산행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 안에서도 마찬가지. 우리는 별 말이 없었다. 당시의 쪽팔림을 무엇으로 설명하리.

드디어 용산역에 도착했다. 용산역 앞에는 버스 두 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보직에 따라 각 선임 병장들이 신병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무뚝뚝하게 생긴 한 병장. 그는 내 이름을 부르더니 아무런 말없이 버스에 올라탔다. 그리고 나도 그의 옆에 말 없이 앉았다. 뒷자석에서는 고참과 신병이 자연스럽게 얘기하며 분위기가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내 옆에 있는 그 고참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버스가 용산역을 떠나 용산 미군기지 South Post를 통과했다. 멋지게 생긴 호텔이 보이고 골프장이 보이고 학교 같은 건물들도 보였다. 외국애들도 많이 보여서 여기가 미국인 것 같았다. 모든 것이 정말 신기했다. 전혀 한국이라는 생각이 안 들었다. 모든 것이 낯설고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이곳이 그 동안 내가 살았던 한국이라니. 그리고 버스가 Main Post로 진입했다. 쭉 직진해서 언덕을 올라가는가 싶더니 맨 꼭대기에서 멈추었다. 그리고 내 옆에 목석처럼 앉아 있던 고참이 마침내 입을 열더니.

"야! 내려!" 

부랴부랴 내렸다.

새 보금자리

그렇다. 우리(헌병) 막사는 용산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있다. 그것부터가 기분 나빴다. 하지만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일. 이미 나는 헌병이 되었다. 고참을 따라 막사에 들어갔다. 복도도 있고 정말 이상한 건물 같다. 화장실도 깨끗하고 외국애들도 보이고. 2소대라고 한다. 2소대 선임하사를 만나고 난 후 내가 2소대라는 것을 실감했다. 그는 마치 옆집 쌀집 아저씨처럼 편안하게 생겼던 선임하사. 잠시 인사를 나누고 방으로 갔다.

내 방. 내 방은 바로 위 고참과 그 위 고참이 함께 쓰는 3인 1실의 방이다. 거기서 내 자리는 침대와 4 drawer(네 칸짜리 옷장) 달랑 하나. 그것이 내 공간의 전부였다. 옆에는 두 개의 커다란 Wall Locker(일종의 장롱처럼 생김)가 가로막고 있어서 낮에도 불을 켜야 겨우 볼 수 있을 정도다. 한마디로 맨 구석에 있는 조그만 공간. 그게 내 방이었다. 그래도 좋았다. 한국군 부대와 비교하면 이곳은 천국이다.

선임병장의 말에 따라 침대에 담요를 깔고 KTA에서처럼 각을 잡았다. 그리고 그 날 저녁 내 방에 있는 고참들이 내 군화와 군복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어리버리하게 빛나던 내 군화가 헌병 고참의 손을 거친 후 마치 불이 나듯 광이 나기 시작했다. 군화에 해가 떴다.


'과연 저게 바로 말로만 듣던 헌병의 광(光)이란 말인가?'

말로만 듣던 헌병의 광(光)을 실제로 경험한 순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군복 또한 예술이었다. 골판지를 만지는 듯한 빳빳함과 이 예리하고도 미세한 각. 머리가 아파왔다. 이제 내가 저짓거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뒷골이 땡겼다.

그렇게 용산에서의 첫날이 지났다.

용산 미군기지는 크게 메인 포스트(Main Post)와 사우스 포트스(South Post)로 구성되어 있다. 메인포스트 최북단(?)에 위치한 일명 헌병의 언덕(헌병대 막사)을 꺾어 내려가면 Camp Coiner라는 조그만 캠프에 당도하게 된다. 용산 기지에는 하나의 조그만 도시라고 해도 무관할 정도로 매우 크며 다양한 시설들이 있다. 병원, 초중고등학교 및 대학교(분교), 도서관, 체육관, 축구장 및 골프장과 미식 축구장에서부터 호텔, 나이트 클럽과 버스 정류장 등 수 많은 시설들이 있고, 게이트(부대 출입구)도 수 십 개에 이른다. 미군은 직업 군인이기 때문에 이렇게 다양한 편의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그 수준도 왠만한 한국의 시설보다 더 좋다. 한국군은 의무 복무이기 때문에 대충 지원해줘도 된다는 생각때문인지 한국군 사병이 받는 전반적인 지원은 정말 열악하다.

Posted by Jason7

6주 동안의 논산훈련소 신병 교육을 마치고 의정부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다. 카투사의 경우 6주 간의 기본 군사훈련을 논산에서 받는데 일반 육군 훈령병과 함께 동일한 훈련을 받는다. 이후 KTA (KATUSA Training Academy)라는 미군 신병 훈련소에서 3주간의 교육을 받은 후 자대로 배치된다. 당시 KTA는 의정부 캠프 잭슨(Camp Jackson)에 위치해 있었다.

6주만의 첫 외출. 특히 서울 도심에 위치한 훈련소라는 점에서 그곳에 간다는 사실에 얼마나 설레였던지. 기차 역에서 내려 걸어서 KTA까지 갔을 때의 그 감흥은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는다. 꿈에 그리던 그곳에 드디어 당도하게 된 것이다!

<KTA에서 동기들과 함께>


한국 속의 또 다른 나라 ‘미군부대’

KTA. 그곳은 나에게 첫 미군부대였다. 이제껏 한 번도 미군부대에 들어가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그곳은 매우 충격적인 곳이었다. 한국 속의 또 다른 나라 ‘미군부대’. 이곳이 한국이라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처음 보는 미군 군복에 독특한 막사, 음식, 장비들을 접하면서 ‘나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기도 했으며 미국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국력이 대단한지 몸소 체험하게 되었다. 천조국의 위엄을 몸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생소한 군대 용어를 영어로 익히려니 고충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영어시험, PT Test(체력시험), 군사시험 등 3주라는 짧은 기간에도 다양한 시험이 우릴 괴롭혔고 가장 긴장되었던 순간은 바로 보직과 자대 배치. 훈련소 곳곳에 남겨진 전설 같은 글들을 통해 익히 들었던 최악의 보직들. 전투병, 헌병 등. 이것만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에 추첨 전날은 천 마리까지 양을 세고도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긴장되었다.


<KTA에서 졸업식 사진들>

그리고 추첨 날짜가 다가 왔다.

환호와 아쉬움, 그리고 절망이 교차하는 이 미묘한 순간. 2사단 전투병에 당첨되어 마치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던 친구들. 용산에 배정 받아 웃음꽃이 활짝 핀 친구들. 이렇게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 나는 다행히 용산에 배정 받았다. 그러나 뭔가 꺼림칙한게 있으니 바로 보직이 ‘(순찰)헌병’. 어, 이게 뭐지?

헌병?

용산은 용산인데 카투사 헌병은 무엇인고? 내 동기 중에서 유일하게 나 혼자 용산 헌병으로 발탁(?)이 되었다. 용산으로 향하는 수 십 명의 동기 중 나 혼자 헌병이다. 용산이라 웃어야 할 지 헌병이라 울어야 할 지. 같은 소대에서 친했던 한 친구는 2사단 헌병으로 갔기에 용산 가는 길이 그리 기쁘지는 않았다. 그리고 카투사에서 헌병이 무슨 일을 하는 것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설마 한국군 헌병처럼 매일 보초만 서는 것은 아니겠지.

‘용산’ 그리고 ‘헌병’.

혼란스러웠지만 무엇보다 혼자라는 사실이 가장 두려웠다.

Posted by Jason7